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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해대책도 재탕 삼탕, 서울시 부끄럽지도 않은가 |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 물난리 직후인 지난 23일 오후 발빠르게 ‘서울시 중장기 수방대책’을 발표했다. 빗물펌프장 41곳을 내년까지 설치하고 저류조 8곳을 추가로 증설한다는 것 등이 뼈대였다. 서울시가 이처럼 재빨리 대책을 발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이 대책들은 이미 2007년에 발표한 ‘수방시설 능력향상 4개년 계획’에 포함돼 있던 것들이었다. 물난리에 대한 졸속 대응 못지않게 수해대책 또한 졸속 베끼기였던 셈이다.
서울시는 최근 기회 있을 때마다 ‘수해 걱정 없는 서울, 수방대책 본격 가동’ ‘시민 수해안전 물샐 틈 없이 지킨다’는 따위의 보도자료를 발표해 왔다. 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엊그제 발표한 것들과 대동소이했다.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않은 계획들을 때마다 대책으로 발표하는 배짱이 놀랍다. 빗물펌프장만 해도 애초 계획으로는 올해 말까지 증설을 끝낸다고 했으나 건설이 완료된 곳은 고작 9곳뿐이다. 서울시가 이런 계획만 예정대로 추진했더라도 이처럼 큰 재난은 피할 수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서울시가 내세운 예산부족 변명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디자인 서울’이니 ‘한강 르네상스’니 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도시 기반시설 확충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데만 온통 신경을 썼을 뿐 몸속 혈관이 막히지 않았는지, 땀과 분비물은 제대로 배출되는지를 살피는 데는 무신경하기 짝이 없었던 셈이다. 내실보다는 겉치장을 중시한 물구나무서기식 정책 우선순위가 결국은 수도 서울의 심장부가 물바다로 변하는 기막힌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서울시가 추진해온 수방대책 자체를 놓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거대도시 서울에서 빗물펌프장과 저류조 몇 개로 해법을 찾는 것은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수해의 근본원인은 도시 전체가 완전히 콘크리트로 덮여 빗물이 스며들 여지가 없어져버린 데 있는 만큼 물이 순환할 수 있도록 도시 환경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기존 계획을 재탕 삼탕 하기에 앞서 이런 지적들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 더욱 정밀하고 근본적인 수해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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