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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야-정 협의, 진정한 소통이 되려면 |
민주당과 정부가 어제 정책협의회를 열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만난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야당의 핵심 당직자들과 내각의 장관들이 만나 정책과 예산 문제를 의논한 공식 ‘야-정 협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이다. 정부가 야당과의 대화 통로를 닫고 있었던 게 결코 정상은 아니다. 이번 회동이 그런 잘못을 바로잡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양쪽은 이번 협의에서 저소득층의 성적우수 장학금 1000억원을 올해 안에 지원하고,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안도 조속히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러 민생 현안에 대한 야당 의견의 반영과 정부의 노력도 다짐했다. 정부와 민주당이 똑같이 친서민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탓에 그런 합의라도 가능했겠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양쪽은 상당수 의제에서 원론적 수준의 의견을 개진하는 데 그쳤고, 핵심 현안에 대한 견해차도 여전히 팽팽하다. 4대강 사업 문제의 경우, 민주당은 국회 특위에서 대안을 만들어 예산을 심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정부는 새로 논의할 시간이 없다며 거부했다.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야당이 걱정하는 집시법 개정을 두고서도 정부는 기존의 조기 처리 주장을 되풀이했다. 대화를 하자면서도 정작 중요한 문제에선 힘 있는 쪽이 생각을 바꿀 뜻이 아예 없는 셈이다. 이래서는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없다.
그런 식의 왜곡된 소통 방식은 진작에 드러났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 요인들과의 만찬에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왜 4대강 사업을 임기 중에 끝마치려고 하나, 야당과 협의해서 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야당의 협조만 거듭 당부하면서 “할 수 없는 것을 너무 요구하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어떤 사안보다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문제인데도 입도 벙긋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꼴이다. 그렇게 미리 선을 그어둔 상태에서 소통을 하자는 것은, 대화는 시늉일 뿐 결정은 정부 뜻대로 하겠다는 억지나 다름없다.
정부가 국정의 한 축인 야당과 정책을 협의하는 것은 민주정치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런 자리에서조차 특정 문제엔 아예 귀를 닫겠다는 게 정상적 소통일 수 없다. 민주당도 그런 겉치레 소통에 연연해선 안 된다. 야당의 본래 임무는 국회 안에서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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