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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친일인사 서훈 박탈, 이번에도 시늉에 그칠 건가 |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독립유공자 20명에 대한 서훈 취소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검토 대상자 가운데는 장지연 <황성신문> 주필,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 윤치영 초대 내무부 장관 등이 포함돼 있다. 보훈처는 일부 유족들한테서는 소명자료까지 제출받아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보훈처의 이런 움직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보훈처의 의도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동안 보훈처가 이 문제에 대해 보여온 미온적인 태도에 비춰볼 때 이번에도 서훈 취소를 진지하게 검토하기보다는 그냥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보훈처는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한 뒤에도 김성수·김용순·이종욱·임용길·허영호 등 5명의 ‘훈장 치탈’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흐지부지 끝냈다. 이 친일명단은 다른 곳도 아닌 대통령 직속 기관인 진상규명위가 몇년간의 깊은 연구와 검토, 유족들의 이의신청 내용까지를 두루 헤아린 끝에 내린 정부의 공식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보훈처는 여태껏 아무런 후속조처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니 직무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훈처도 이미 밝혔듯이 독립유공자들의 과거 행적을 따져서 이들의 ‘친일행적이 공적보다 크다고 판명될 경우’ 서훈을 박탈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예를 들어 일제의 전시 통제기구인 국민총력조선동맹 이사를 지낸 김성수의 경우만 해도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는 따위의 글을 발표하며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친일행각을 벌였다. 그가 교육과 인재 양성 등에서 보인 공적에 비해 이런 친일행위의 죄과가 훨씬 무겁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서훈 취소 검토 대상에 오른 대부분의 친일인사들도 대동소이하다.
친일인사들에 대한 서훈 박탈은 과거 잘못에 대한 단순한 앙갚음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시시비비를 올바로 가려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후세에 경종을 울리는 엄숙한 작업이다. 그런데도 보훈처가 친일인사 후손들의 압력이나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부 언론의 딴죽걸기에 휘둘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보훈처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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