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독소조항 수정 없이, 끌려다니는 한-미 FTA 재협상 안된다 |
그동안 밀실협상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외교통상부는 그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드미트리어스 머랜티스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협정 수정을 위한 비공식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주요 요구는 자국산 쇠고기 수입의 전면 개방과 자동차에 대한 한국 시장 접근 확대라고 한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합의·서명한 협정문을 자국 여론을 핑계로 수정을 강요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전례가 드문 오만무례한 일이다. 협정 내용이 한국에 유리한 것도 아니다. 미국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할 수 있게 한 투자자-국가 소송제나, 서비스 분야의 수입을 자유화하되 수입금지 품목만 열거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등이 포함된 협정은 체결 당시부터 불평등 협상의 전형으로 비판받았다. 특히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한 국가의 공공정책 수립권을 위협하는 독소조항으로 지목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 쪽이 자동차 분야만을 지목해 재협상을 요구하고, 여기에 쇠고기 문제까지 끼워넣어 자국의 이익만 관철하려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수용 불가를 천명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협상 때처럼 비등하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대폭적인 양보를 한 정부이니 걱정되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협상 불가를 내세우며 뒤로는 양보하는 꼼수다. 환경부는 이미 국내 판매량이 적은 자동차는 연비나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를 면제해줄 수 있는 예외조항을 담은 ‘연비·온실가스 배출허용기준 고시’(안)을 입법예고해 그런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차가 환경 규제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특혜를 누리도록 한 것이다.
이런 꼼수를 부릴 양이면 차라리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게 옳다. 이참에 자동차뿐 아니라 우리가 문제로 지적해온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네거티브 리스트 문제도 논의해 독소조항의 전면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요구에 대해선 미리 쐐기를 박아야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핑계로 국가의 미래와 국민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칠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쇠고기 협상에 끌려다니다 양보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