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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실 공개 한사코 막는 이명박 정부의 진실화해위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중 민간인학살 관련 비공개 문서를 논문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해당 조사관을 해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런 처분이 합당한지 의아하다. 은폐·왜곡된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려 만든 진실화해위가 이제는 되레 진실의 공개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사관 해임의 빌미가 된 문서는 민간인학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거창·함양·산청 지역의 미수복지구에 있는 주민들을 두고 ‘적의 손에 있는 사람은 전원 총살하라’고 지시한 국군 11사단 토벌군의 ‘작명 5호 부록’은, 1951년 당시 양민학살 사건이 군의 정식 작전명령에 따라 실행됐음을 입증하는 최초의 군 내부 문서다. 당시 특무대가 현장조사를 하면서 작성한 ‘수습대책’에는 피해자 수를 줄이고, 노인·어린이·부녀자 학살, 성폭행, 재산탈취 등을 은폐하거나 축소한 과정이 담겨 있다. 함양·산청 지역의 양민학살은 그런 왜곡 탓에 오랫동안 가려졌다.
진실화해위는 50년 넘게 공개되지 않은 이들 문서를 2007년 8~9월 군에서 입수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3년 가까이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그도 모자라 그런 내용을 논문에 쓴 조사관까지 해임했다. 진실 규명의 의지는커녕 진실의 공개를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된다.
그렇게 의심할 만한 일이 이번만도 아니다. 지난해 3월 발간된 진실화해위의 1차 영문활동보고서는 그해 말 취임한 이영조 위원장의 지시로 갑자기 배포가 중단됐다. 번역이 잘못됐다는 이유를 댔지만, 동의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이 위원장을 비롯한 보수성향 인사들이 책자에 담긴 그동안의 활동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마뜩잖게 여긴 탓이 아닌지 의심된다. 이 위원장은 또 석달 전 최종 심의의결된 한국전쟁 중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보고서 여러 건의 결재를 미뤘다는 비판도 받았다.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피해 유족들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처사다.
지리산 둘레길에는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 희생자 추모공원이 있다. 용케 살아남은 식구 하나가 어머니·형·형수·동생·조카 이름으로 세운 비석들이 줄줄이 늘어섰고, 그나마 남은 가족조차 없는 이들을 함께 묻은 무덤도 있다. 그런 참혹한 진실을 억지로 감추려 들거나 애써 외면하려는 이는 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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