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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황장엽씨의 장례와 관련한 그릇된 행태들 |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장례를 둘러싸고 의아스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정부는 급하게 고인한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는데, 결정 근거가 명쾌하지 않다. 또한 일부 보수언론은 황씨의 빈소를 적극 조문하는 정파와 그렇지 않은 쪽으로 갈라놓고 야당을 색깔론으로 공격하고 있다. 모두 황씨의 행적과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씨는 주체사상을 정비한 북한 체제의 대표적 이론가였다. 따라서 오늘날 북쪽이 직면한 위기 또는 체제 실패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남쪽으로 넘어온 다음에도 이와 관련된 책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한 적이 없다. 되레 그는 “주체사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한 게 아니라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더 발전시키고 개선해서 파급시키려 했다”(뉴라이트전국연합 이주천 대표)고 한다. 보수세력 한쪽에서도 이런 이유로 황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했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충분한 논의도 없이 훈장 추서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황 전 비서는 북한 민주화와 발전, 개혁·개방을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다. 그가 역대 최고위급 탈북자로서 북한 권력 내부 동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공로는 있을 것이다. 국가기관이 그의 신변을 보호하고 상당한 배려를 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당연한 반대급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전개한 이른바 북한 민주화운동이 과연 북쪽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다. 북쪽의 민주화와 인권 증진을 바란다면 폐쇄국가인 북쪽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도록 하는 게 유력한 방법일 것이다. 이는 여러 다른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검증된 경로이기도 하다. 북한 체제의 문제점만을 반복 선전하는 그의 운동방식은 오히려 북쪽이 문을 더 단단히 걸어닫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정부는 애초 황씨의 경우 국립묘지 안장 요건이 되지 않는 것으로 봤다고 한다. 그러다가 훈장이 있으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훈장 추서 절차를 밟기로 했다는 것이다. 확립된 절차와 기준을 무시하고 이렇게 편의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잖아도 논란을 빚어온 훈장과 국립묘지의 의미가 이번 일로 더욱 훼손되는 듯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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