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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리의 ‘수준 이하 현실인식’이 우려스럽다 |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부터 적잖은 자격 시비를 겪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이나 행적에 비춰볼 때 내각을 이끌 적임자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엊그제 김 총리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그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김 총리는 지금의 우리나라 복지를 ‘과잉복지’ ‘무조건 복지’라고 규정하면서,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등에 대한 반대 뜻을 분명히했다. 김 총리는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 봐주지 말아야 한다” “과잉복지가 되다 보니 일 안 하고 술 마시고 알코올 중독 되고 한다”는 따위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과잉복지 탓에 노동 기피 현상이 빚어지고 알코올 중독자들이 생겨난다는 식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인식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에 이르면 그가 이러고도 친서민 총리를 표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운영에 대한 폭넓은 구상과 계획 대신 지엽말단적 문제에만 매달린 것도 실망스럽다. 사실 노인 지하철 무료탑승은 지하철 적자 문제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거론돼온 사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인복지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데다, 회사 쪽의 자구노력으로 해결할 문제를 노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정부 안에서도 다수의견이다. 김 총리의 이날 발언은 그런 점에서 매우 뜬금없어 보인다.
김 총리의 발언이 그렇잖아도 취약한 복지정책을 ‘선별적 복지’ 쪽으로 전면 수정하겠다는 뜻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발언이 나온 뒤 총리실이 황급히 나서서 확대해석을 경계한 점을 봐도 그렇다. 만약 그의 발언이 개인적 생각이나 소신을 정부 내 의견 조율도 없이 밝힌 것이라면 그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어떤 무게를 갖고 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이번 발언 파문이 더 걱정스러운 것은 김 총리의 왜곡된 현실인식이 단지 복지 문제에만 그치겠느냐는 의구심에서다. 노인 문제만 해도 김 총리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평균적 노인’과는 거리가 먼 특수계층일 게 분명하다. 그런 창을 통해서 현실을 진단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돼 있다. 김 총리가 취임 초부터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과 유리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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