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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야간집회 금지’ 시도, 명분도 근거도 없다 |
한나라당이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개정하려는 뜻을 버리지 않고 있다. 어제는 개정안을 날치기로 상정하려다 야당 쪽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야당과 시민사회, 학계 등이 반대하는데도 막무가내다. 왜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개정 이유는 하나같이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 야간 옥외집회가 불법 폭력시위로 번질 위험이 크다는 주장부터가 그렇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집시법 제10조(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이 효력을 상실한 지난 6월30일 이후 수백 건의 야간집회가 열렸지만 사회적 혼란이나 폭력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경찰 자료에 그렇게 나와 있다. 야간집회에 투입된 경찰 수도 일반 집회 때의 15%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평온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전체 집회·시위 가운데서도 폭력이나 불법으로 번진 비율은 다른 선진국에 견줘 많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집회문화가 폭력적이어서 야간집회 등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의도적 왜곡일 뿐이다.
야간집회로 사생활의 평온이 위협받는다는 주장도 머리와 꼬리를 뒤집었다. 7·8월에 열린 야간집회는 평균적으로 밤 10시 이전에 끝났고, 집회 장소도 주택가가 아니라 도심지였다. 수면권 등이 침해받을 상황은 아니다. 이를 핑계삼아 야간집회를 일률적으로 막으면 퇴근 뒤 늦은 시간에나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직장인 등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헌법상 권리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한다. 야간집회가 전면 허용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는데도 굳이 야간집회 금지 규정을 두려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 위헌의 혐의를 피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야간이라고 해서 주간과 달리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이유는 없다고 이미 판단했다. 그런 터에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로 된 옛 금지규정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바꾼다고 해서 위헌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설령 야간집회에서 불법이 벌어지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촘촘한 집시법의 다른 규제조항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야간집회 금지 규정을 두려는 데는 이명박 정권의 ‘촛불 알레르기’ 말고 다른 이유나 명분은 찾기 어렵다. ‘집시법 개악’은 며칠간 유보할 게 아니라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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