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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권력 비위 맞추려 상임위원 발목잡는 인권위 |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등장한 이래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독립적 인권수호기관 구실을 포기하고 정권의 시녀 노릇을 자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인권위의 위상을 지키려고 애쓴 것은 상임위원들이었다. 위원장을 제외하고 인권위 상임위원은 3명이다. 각각 대통령과 한나라당, 민주당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유남영·문경란·장향숙 위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양천경찰서 고문행위를 직권조사로 밝혀냈고 정보통신 심의를 민간에 이관하라는 권고도 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런 상임위원들의 활동마저 막으려고 한다. 김태훈·최윤희·한태식 등 이른바 보수 성향 비상임위원들이 상임위원 권한 축소안을 오늘 열리는 전원위원회에 낸 것이다. 이들이 내놓은 안의 핵심 내용은 상임위원 2명이 합의하거나 위원장의 제안이 있을 경우 상임위에서 다룰 수 있는 안건을 전원위에 회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최근 인적구성이 바뀌어 6 대 5로 보수적 인사들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전원위를 통해 상임위의 권한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올해 말과 내년 2월까지로 돼 있는 유 위원과 문 위원의 후임으로 보수적 인사가 지명되면, 이들을 통해 남은 장 위원의 활동까지 무력화하겠다는 뜻까지 갖고 있는 듯하다.
우스운 것은 현 위원장 취임 뒤 전원위는 자신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권위 운영지침은 헌법재판소나 법원에 의견을 제출하거나 사안이 중대할 경우 전원위에서 논의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대표적 사례였던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가의 명예훼손 소송이나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야간집회 금지에 대해서는 마땅히 전원위에서 논의해 의견을 냈어야 하지만 입을 닫았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문제에 대한 의견 표명 노력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으려다 보니 한달에 두번 전원위를 열도록 한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이렇게 자기 일도 못하는 전원위를 들먹이며 상임위원들의 활동조차 막으려는 것은 인권위를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뜻일 뿐이다. 국민의 인권을 지키려는 모든 노력을 막으면서 정부의 눈치나 보는 인권위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전원위가 상임위원의 권한 축소안을 수용한다면 차라리 인권위의 간판을 내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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