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10.28 21:02 수정 : 2010.10.28 21:02

헌법재판소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군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내용의 불온도서에 대해선 이를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권 수호의 보루여야 할 헌재가 되레 명백한 기본권 침해에 면죄부를 줬으니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헌재도 인정한 대로, 국방부가 불온서적 지정의 근거로 삼은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는 ‘알권리’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로 인해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도 침해받을 수 있다. 군인이 일반 국민에 견줘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어느 정도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특수한 처지라고 하더라도, 그 제한은 꼭 필요한 범위에 그쳐야 하고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기본권의 예외없는 보장은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헌재는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군의 정신전력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불온서적 지정에 손을 들어줬다. ‘국가의 존립·안전 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불온서적은 군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므로 이를 금지하는 게 자의적이지도 지나치지도 않다는 논리다. 사실상의 검열로 알권리 등 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됐는데도, 그런 사실엔 눈감은 꼴이다.

문제된 책들을 보면 이런 주장은 억지임이 금세 드러난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이라고 지정한 책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양서로 추천했거나 방송이 권장도서로 뽑은 책, 대학의 교양수업 교재, 세계적 석학의 저서, 여러 언론이 올해의 책으로 꼽은 베스트셀러 등이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비판적인 책은 있을지언정 국가의 존립과 체제를 해치거나 북한을 이롭게 할 책은 없었다. 유독 군만 불온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시민사회는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군의 잘못을 비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군이 사회 일반의 지성과 인식 수준에도 못 미친 채 퇴행할 때 정신전력이 더 심각하게 저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마당에선, 불온서적 지정이 명확한 기준에 따라 지나치지 않게 적절히 이뤄졌다는 헌재의 변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명확성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 등은 지켜야 하는데, 국방부는 자의적으로 불온의 기준에도 해당하지 않는 책들까지 금지해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위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