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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포폰’으로 사찰 지휘한 청와대가 바로 ‘몸통’이다 |
청와대가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다른 사람 명의를 빌린 ‘대포폰’ 5대를 만들어 나눠줬던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에 보냈다는 사찰보고서도 공개됐다. 청와대 개입 사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자, 유력한 수사 단서다. 검찰도 진작에 이를 확보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검찰은 본격 수사를 회피했고, 심지어 지금껏 이를 숨겨왔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법무장관까지 인정한 이런 사실대로라면 청와대는 불법사찰의 몸통임이 분명하다. 청와대 행정관이 사기 따위 범죄행위에나 쓰일 법한 대포폰을 지원관실 직원들에게 나눠줬다면 청와대가 비밀통화를 통해 불법사찰을 지휘했다고 보는 게 상식에 맞는다. 꼬리를 잘라 숨겨야 할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왜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게다가 이 행정관의 직속 상관은 애초 지원관실의 비선 보고 통로로 지목됐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다. 지휘와 보고 통로가 일부 드러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여러 기관을 동원해 사찰을 벌였다고 볼 만한 물증도 있다. 지원관실에서 청와대 하명 사건을 맡았다는 공직1팀이 만든 내사보고서에는 지원관실 말고 국가정보원도 여당의 특정 중진의원을 내사하고 있다고 돼 있다. 정부의 여러 기관이 경쟁적으로 사찰을 벌였고 그 사령탑이 청와대에 있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검찰은 그동안 청와대의 개입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명백한 단서도 한사코 모른척했다. 대포폰을 만든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선 누가 알세라 검찰청사 밖에서 몰래 조사를 한 뒤 덮었고, 이 전 비서관에 대해선 고작 6시간의 시늉뿐인 참고인 조사 끝에 무혐의 처분했다. 명백한 물증인 대포폰도 청와대에 돌려줬다. 정상적인 검사라면 이렇게까지 무능하고 나태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수사 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장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상의한 뒤에 이런 사실을 덮도록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불법사찰을 지휘한 청와대가 은폐 공작까지 명령한 셈이다.
이런 마당에까지 재수사를 거부한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검찰에 수사 능력과 의지가 없다면 특별검사를 임명해서라도 청와대의 사찰 지휘 의혹을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 명백한 범죄 혐의를 외면하고 은폐한 검찰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혀내고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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