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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공정성과 형평성 잃은 검찰의 압수수색 |
불법행위를 파헤치는 것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고유 권한이자 의무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법을 어겼다면 소속 정당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 이런 대원칙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부패 척결이라는 목적 하나로 모든 게 합리화될 수는 없다. 검찰이 최근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 로비 의혹과 관련해 여야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을 동시에 압수수색한 것은 여러모로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보인다.
압수수색은 증거 수집을 위한 손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최소화하는 게 옳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취임사에서 “명예와 배려를 소중하게 여기는 신사다운 수사” “의사가 환부만 도려내듯 정교하게 하는 수사”를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의 이번 압수수색에서 ‘신사다움’이나 ‘정교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더욱이 국회의원 후원회 계좌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지적했듯이 증거를 인멸하기 힘든 자료다.
압수수색이 파문을 빚자 수사 주체인 서울북부지검은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자청해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가 있어서 압수수색을 한 것이 아니고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해명은 도리어 의구심만 증폭시킨다.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우선 압수수색부터 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해당 의원들의 정치생명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검찰 설명대로 범죄 혐의도 불분명한 정치인들에 대해 압수수색부터 했다면 검찰권 남용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후원회 통장뿐 아니라 지역위원회 사무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복제해 가고, 일부 의원의 사무국장 부인 통장과 부모 집까지 뒤졌다고 한다. 특히 검찰이 복제해 간 하드디스크에는 당원과 대의원 명부, 각종 보고서 등 정당의 각종 기밀자료가 들어 있다고 야당 쪽은 반발한다. 검찰로서는 정당의 내밀한 활동 내역을 손금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를 손에 넣은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이 이번 수사와는 전혀 관련 없는 혐의를 찾아내 ‘별건 수사’를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압수수색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검찰의 공정성과 형평성 상실 때문이다. 검찰은 그동안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검찰 성상납 의혹 사건 등에서는 이런 날쌔고 과감한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 대포폰’ 사건의 경우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나서서 검찰의 미온적인 태도를 질책하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번 압수수색을 놓고 대포폰 수사 문제로 궁지에 몰린 검찰이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는 얄팍한 꾀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부패 척결에 성역이 있을 수는 없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도덕적 불감증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검찰이 사회 일각의 정치혐오증에 편승해 마구잡이식 수사를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검찰의 더욱 신중하고도 세심한 수사 자세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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