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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미 FTA, 차라리 전면 재협상하라 |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법과 관련해 이제까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두 정상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타결을 선언하지 못한 것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협상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두 정상은 2년 이상 중단된 6자회담을 재개할 어떤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공조체제 강화만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적절한 시기에 6자회담을 다시 시작할 시점이 올 것이라는 데 합의했다”면서도 거기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까지의 대북 압박 기조를 더 끌고 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의 굴복을 마냥 기다리는 이런 태도는 핵문제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필수요건임을 재확인”했다면 그에 따른 효과적인 방법론이 나와야 한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에 집착한 나머지 핵문제를 풀 기회를 놓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은 쇠고기 문제 때문에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협상은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 출발부터 미국의 일방적 요구로 시작됐고, 의제도 미국이 원하는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로 국한했다. 그것도 미국은 시한을 정해놓고 타결을 압박했다. 이렇게 미국의 이익 확대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재협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이번 재협상에서 미국 차에 대해 환경 규제와 안전 기준을 완화해주는 등 자동차분야에서 대폭 양보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동차분야의 기존 협정도 미국 차에 대해서는 수입관세를 바로 철폐하고 세제혜택까지 주는 등 이미 우리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 여기에다 미국이 요구하는 환경·안전 기준까지 완화해준다면 자동차분야의 이익 균형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특히 자유무역협정과 별개 사안인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 문제는 재협상과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는 자유무역협정을 포기하더라도 쇠고기시장 추가 개방은 안 된다는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마땅하다. 더욱이 국내 쇠고기 시장은 이미 충분히 개방돼 있다. 미국은 30개월 이상 쇠고기까지 수입하도록 압박하지만 세계적으로 그런 나라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재협상을 계속한다면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국이 자동차분야는 이미 챙겼다고 전제하고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을 밀어붙이는 협상을 하려 한다면 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차라리 전면 재협상을 하는 게 낫다. 미국이 고치고 싶어하는 자동차분야뿐만 아니라 국가-투자자 제소제 등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도 모두 의제로 올려놓고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전체적인 이익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협상 시한도 몇주 또는 연말이라고 못박아서는 안 된다. 두 나라가 상호 관심 갖는 모든 의제에 대해 협의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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