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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면 재협상 아니면 한-미 FTA 포기 검토해야 |
미국 정부가 지난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협정문 본문 수정을 강력하게 요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이렇게 밝히고 “상호 수용 가능한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협의를 계속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본문을 수정하는 재협상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도 수정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에 대해 ‘재협상은 없다’며 수용 불가 태도를 고수했다. 특히 정부가 미국의 추가 요구 논의에 응하면서 이런 여론은 더 높아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론의 비판이나 정치권의 수정 요구를 모두 무시하다가 미국이 강하게 압박하자 금방 손을 들고 말았다. 국내의 요구에는 귀를 막고 미국의 요구는 들어주겠다는 태도다. 말로는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고 하지만 재협상을 공식화한 것은 결국 미국에 대한 추가 양보의 방법을 찾는 절차에 불과하다.
자유무역협정은 기본적으로 많은 법률 개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최종적인 승인 절차뿐 아니라 협상 과정에서도 국회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수렴해 가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협상권이 의회에 있는 까닭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한번도 그런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일방적으로 합의해놓고 국회에 통과시켜 달라는 식이었다.
더는 이를 용인할 수 없다. 정부는 이미 스스로 한 약속을 뒤집으면서 일방적인 양보만 거듭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특히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관세 철폐 시한 연장, 관세환급 제도의 완전 철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 도입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세이프가드 도입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치다. 미국 자동차의 국내 수입 물량이 매우 적어 적용 대상은 미국에 수출되는 한국 차일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농산물과 국가-투자자 제소 조항 등 다른 여러 분야를 내주고 얻어낸 자동차 분야의 성과를 모두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동차에 국한된 재협상은 안 된다. 그것은 원칙과 실리를 모두 잃는 일이다. 재협상을 하려면 우리에게 불리한 기존 조항을 모두 올려놓고 전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포기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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