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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취약한 정책으로 겹고통 겪는 탈북이주민 |
북쪽을 떠나 남쪽으로 온 탈북이주민이 2만명을 넘어섰다. 1만명을 돌파한 지 불과 3년 만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북쪽 주민의 남쪽 이주는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이들의 고통을 헤아려 잘 정착하도록 돕고, 앞으로 통일 과정에서 밑거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탈북이주민들은 고달프다. 남쪽으로 오기까지 고생한 것만큼이나 남쪽 생활도 힘들다. 통일부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온 지 6개월이 넘는 15살 이상 탈북이주민의 경제활동 참가율(48.6%)과 고용률(41.9%)은 일반 국민보다 13~17%포인트가 낮다. 월평균 소득은 127만원에 불과하고, 국민의 3.2%에 해당하는 기초생활수급 가구가 탈북이주민 가구에서는 절반을 넘는다. 취업을 하더라도 식당이나 공사현장 같은 단순노무직(31.5%)과 기계 조작·조립(23.2%)이 중심이다. 한마디로 탈북이주민은 우리 사회 주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사회적 약자다.
탈북이주민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도 크다. 새 삶을 찾으려고 어렵게 왔으나 남쪽 주민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탈북이주민들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이 여전히 절반을 넘고, 탈북 청소년들은 또래로부터 왕따가 되기 일쑤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입을 닫고 사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신분을 속이고 다시 제3국행을 시도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탈북이주민들은 끊임없이 정신적 갈등을 겪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이 마음 편하게 살도록 보듬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취약한 정부 정책도 문제다. 우선 이들이 처음 만나는 남쪽 사회인 하나원 생활부터가 너무 폐쇄적이다. 남녀 시설이 구분돼 가족이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도 고통인데, 남쪽 국민으로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기간까지 최근 90일에서 180일로 늘어났다. 가끔씩 이상한 식으로 터지는 ‘탈북이주민 간첩사건’도 큰 심리적 압박이 된다. 정부의 고용지원 정책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 지난해 10명에 이르던 하나원 내 탈북이주민 직원이 올 상반기에 모두 해고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탈북이주민들의 자활 의지를 꺾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탈북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대북정책과도 직간접으로 얽혀 있다. 남북관계가 순조로울수록 탈북이주민들의 정착 환경 또한 좋아지기 마련이다. 깊이있는 탈북이주민 정착 지원책과 전향적인 대북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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