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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숙한 정보판단에 ‘진실게임’까지 벌이는 정부기관들 |
북한의 도발 징후를 미리 포착해 관계기관에 전달했다는 국정원의 국회 보고를 둘러싸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그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8월 북쪽에 대한 통신 감청을 통해 서해5도에 대한 공격 계획을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위원들의 질문에 “그런 분석을 했다”고 답변했다. 원 원장은 “북한이 상시적으로 위협적 언급을 했기 때문에 민간인 지역까지 포격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정원장의 발언은 정보당국이 북한의 도발 징후를 사전에 파악했는데도 ‘설마’ 하는 생각에 안이하게 대처했음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이런 정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사전에 철저히 대비했더라면 북한에 무방비로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중대한 판단 착오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원 3차장은 이날 국회에서 “그런 내용을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합참은 “우리 군의 포사격 훈련 계획에 대해 북쪽이 해안포부대에 대응사격을 준비하라는 첩보일 뿐 서해5도를 공격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역시 “국정원으로부터 유의미한 보고를 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북한의 도발 징후를 사전에 포착했느냐를 놓고 관련 부처들끼리 ‘진실게임’을 벌이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다.
정보당국이 입수한 정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국정원과 군, 청와대의 말이 저마다 달라 지금으로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안보 관련 부서들의 무책임과 책임회피다. 국정원은 관련 정보를 군과 청와대에 통보했으니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이고, 군과 청와대는 제대로 된 보고도 하지 않고 이제 와서 웬 딴소리냐는 투다. 손발이 맞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이나 하는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안보팀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의심하게 만든다. 앞뒤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듯한 국정원장이나,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군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북 정보 수집과 판단 능력 강화 따위의 차원을 넘어서는 고강도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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