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05 22:08
수정 : 2010.12.05 22:08
사실의 빛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데 온전히 바쳐진 선생의 삶. 이제 누가 앞장서 허위의 장막을 찢고 우상의 주술을 벗겨낼까. 탐욕의 족쇄를 깨뜨리고 자유인의 길로 이끌까. 선생은 홀연히 떠났지만, 우리의 눈앞은 캄캄하고, 머리는 허둥대고, 가슴은 떨린다. 언제나 선생의 뒤를 따르던 이들이었기에 더욱 황망하다.
혹자는 선생을 사상의 은사 혹은 사상의 스승으로 상찬하지만, 선생의 위치는 전선의 맨 앞자리였다. 대학 강단마저 허위와 싸우는 전선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땐 고교 강단에서 전선으로 달려나갔듯이, 언론과 학계에선 허위 그리고 우상과 맞서 싸우는 최전방의 전사였다. 탄광의 갱도보다 더 힘들고 위태로운 진실의 막장, 선생의 자리는 언제나 그 갱도 끝이었다.
일쑤 말했듯이 선생이 글을 쓰는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것에서 그쳤다. 베트남전과 미군 개입의 진실, 미국 세계전략의 진실, 분단의 진실, 남과 북의 진실, 쿠데타의 진실, 자본과 시장의 진실, 전체주의 등.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던 것들의 정수리를 선생은 겨냥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그를 회유하고 압박했지만, 그의 글쓰기를 멈추게 하진 못했다.
진실의 드러냄만이 약자의 유일한 무기였던 시절, 그건 최고의 금기였다. 지배집단은 더 큰 권력과 더 많은 부를 위해 거짓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상을 앞세워 굴종의 노예로 만들고자 했다. 그런 이들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천착했으니, 선생은 9번의 형사입건, 4번의 구속, 언론과 학계에서 모두 4번의 해직을 감수해야 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어머니의 부고도 감옥에서 받아야 했다.
이러했으니 권력과 그 부나비들이 선생을 의식화의 주범이라고 매도할 법도 했다. 물론 선생이 진실을 드러내고, 진실로써 어둠을 밝히려 했다는 점에서 선생의 노력이 의식화 곧 계몽의 빛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생이 추구한 진실이, 다른 이를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그들의 비난은 부질없다. 선생의 진실은 진정한 자유인, 곧 인간의 해방과 행복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이야말로 선생을 은사로 삼아야 했다.
허위와 우상을 키워냈고 지금도 키우는 것은 분단체제. 분단을 빌미로 남과 북의 정권은 전체주의를 강화했고, 폭력을 제도화했으며, 수탈을 합리화했고, 인간성 파괴를 상습화했다. 선생이 종내 민족 문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고, <한겨레> 방북취재 기획으로 선생은 결국 다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1999년 연평도 교전사태 직후 북방한계선은 남쪽의 영토선이 아니라고 하여 충격을 주었듯이, 1998년 방북 땐 북쪽 정권의 이중성을 대놓고 비판한 것도 선생이었다.
<한겨레>의 탄생을 두고 선생은 ‘캄캄한 하늘에 뜬 큰 별’에 비유했다. 우리는 그것이 단지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빛으로서 <한겨레>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의 표시였음을 안다. 지금도 여전한 자본과 권력의 숨겨진 진실을 <한겨레>는 얼마나 드러냈는가. 생존을 핑계로 타협한 일은 없는가, 선생은 과연 평안히 눈을 감으셨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삼가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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