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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자금법 개정안 졸속처리 안 된다 |
정치권이 단체와 기업의 후원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치자금법을 고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인의 경우 국회의원 한 명에게 1년에 100만원까지, 단체는 500만원까지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도록 여야가 합의했다고 한다. 또 기부 명세를 공개하면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 규정도 신설하겠다고 한다.
2004년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현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유권자 개개인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으나, 시행 과정에서 허점도 드러냈다. 특히 기업·단체에서 뭉칫돈을 소액으로 나눠서 내는 ‘쪼개기 후원’의 문제점이 검찰의 청목회 수사를 계기로 도마 위에 올랐다. 따라서 소액 후원금의 불법성 시비를 해소하는 등 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땜질식 입법은 절차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개정안은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뒤 곧바로 다음날 상임위에 상정될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국회법상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법안이 제출된 뒤 15일이 지나야 상정할 수 있다는 규정마저 무시했다.
여야가 합심해 정치자금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청목회 수사를 무력화해야 한다는 데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법원이 면소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물론 검찰의 청목회 수사는 정치후원금의 본질을 도외시한 과잉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긴 하다. 그렇더라도 정치권이 스스로 ‘면죄부 법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다.
개정안 내용도 문제점이 많다. 단체뿐 아니라 기업들에도 정치후원금을 허용할 경우 국회의원들이 ‘소액 다수’보다는 기업 쪽에 손을 벌리면서 정치권과 기업의 유착을 부추길 수 있다. 기부 명세 공개시 형사면책 조항도 면밀한 법리적 검토를 거쳤다기보다는 눈앞의 검찰 수사만 염두에 둔 성격이 강하다. 공무원·교사의 정치후원금 기부를 계속 묶어놓은 것도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자금법 개정은 결코 여야의 밀실 합의로 추진할 문제가 아니다.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졸속 입법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것을 정치권은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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