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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09 18:23 수정 : 2010.12.10 08:16

이것은 국민 대표 기관으로서 권능을 부인하는 ‘의회 쿠데타’에 가깝다. 단순히 국회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거나 일부 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는 정도로 볼 일이 아니다. 법안과 예산안을 심의하고 서로 다른 견해를 조정하는 것은 의회 본연의 구실이다. 이를 집권세력이 깡그리 무시한 게 그제 국회에서 벌어진 사태의 본질이다. 이런 식이라면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면 그만이지 국회를 둘 이유가 없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낸 서울대 법인화법은 전국의 다른 국립대와 많은 교수들이 반대하는 등 찬반 논란이 분분했다. 국회의 해당 상임위인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는 상정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예산안과 함께 24개 의안을 직권상정하면서 정부 원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에서 한 차례도 논의하지 않은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학기술기본법 또한 이제 막 국회에 통보돼 해당 상임위원들이 구경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안이 직권상정으로 통과됐다.

파병동의안이 날치기 처리된 것도 헌정 사상 처음이다. 파병은 국제사회에서 나라의 위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까닭에 국민적 합의가 한층 중요하다. 박정희 정권도 베트남 파병을 추진할 때 야당이 격렬히 반대했지만 토론과 표결 등의 절차를 건너뛰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랍에미리트 파병은 원전 수주에 따른 ‘상업 파병’이라는 명분 문제에다 이슬람권과의 관계 악화 등의 위험성이 큰 사안이다. 국회가 논의해 문제점을 걸러야 할 터인데 정반대로 행동했다.

여야는 4대강 예산과 별개로 다른 분야 예산과 관련해서는 며칠째 계수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갑자기 모든 심의를 중단하더니 정부 원안 거의 그대로를 본회의에 올려 날치기로 처리했다. 한나라당이 국회 고유의 예산심의 권한을 스스로 팽개친 것이다.

사태의 총체적 책임은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한테 있다. 의회 본연의 기능마저 무시한 그의 독선적 행태는 과거 독재정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국회의 권능을 수호하긴커녕 의회 무력화의 하수인을 자청했다. 입법부 수장 자격을 더는 인정하기 어렵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의 행적도 똑똑히 기억해둬야 한다.

창조한국당의 유원일 의원은 사태에 강력히 항의하는 뜻으로 어제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민주노동당은 범야권·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비상시국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국면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몸을 실어 대처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응은 다소 느슨해 보인다. 박희태 의장의 사퇴와 날치기 법률들의 폐기 요구는 기본일 뿐이다. 그 이상의 결의가 필요한 때다. 의회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사태다. 비상한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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