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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칙 없이 흔들리다 파국 맞은 현대건설 매각 |
현대건설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어제 주주협의회에 ‘현대건설 매각 본계약 체결 승인안’ 등을 상정했다. 정책금융공사 등 주요 주주의 반대로 ‘본계약 체결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이어서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에 매각하려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책임은 매각 작업을 주도한 현대건설 채권단에 있다. 주요 채권단인 정책금융공사, 외환은행, 우리금융 등은 처음부터 손발이 맞지 않았다. 지난 11월15일 입찰 서류를 마감한 뒤 하루 만에 서둘러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부터 문제였다. 방대한 입찰 서류를 제대로 심사했는지 의문이다. 그 뒤로 외국계 은행의 대출금에 대한 의혹 등이 제기됐는데도 외환은행은 독자적으로 현대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버렸다. 뒤늦게 정책금융공사가 이의제기를 하는 등 채권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엇박자로 갔다. 더구나 채권단은 입찰 제출 서류에도 없는 대출계약서를 추가로 요구하는 등 원칙 없는 행보를 거듭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매각 작업이 물고 물리는 복잡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를 자초한 셈이다.
우선협상대상자에서 탈락한 현대차그룹의 계속된 문제제기도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현대차그룹은 외국계 은행의 대출계약서 제출을 요구하는 등 현대그룹의 자금조달 방식에 잇달아 이의를 제기했다. 채권단인 외환은행 실무자에 대해서도 입찰 방해 혐의로 검찰해 고발하겠다고 밝히는 등 현대건설 인수전을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가는 데 한몫했다.
외국계 은행의 대출금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한 현대그룹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의 법률자문사는 현대그룹이 추가로 제출한 대출확인서가 법적 결함이 있고 대출계약서를 대신할 만한 수준의 문서도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대출계약서를 추가로 제출하는 게 인수합병의 일반적인 관행은 아니라고 하지만 의혹 해소 차원에서라도 법적으로 유효한 서류를 일찌감치 제출했더라면 이번 사태는 조기에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이제 현대건설 매각건은 지루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만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차분히 되돌아보고 현대건설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적절한지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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