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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백신 접종은 극약처방이다 |
우려했던 대로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처음 발생한 경북지역을 벗어나 수도권인 경기까지 퍼졌다. 1~2주의 잠복기를 고려하면 감염의 범위는 훨씬 더 넓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처분한 소·돼지도 18만여마리에 이른다. 규모가 가장 컸던 2002년의 16만여마리를 이미 넘었다. 잘못하면 전국 대부분 지역이 구제역에 휩쓸리는 사상 최악의 사태가 우려된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구제역은 계속 확산되는데 발생 원인과 감염 경로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방역망도 곳곳이 뚫려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구제역을 더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는 백신 접종 얘기까지 정부 안에서 나오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좌충우돌하는 정부 모습에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달 23일 최초 신고가 된 뒤 초동대응이 미숙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방역망이 아무런 구실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경기도의 구제역이 경북에서 확산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양쪽 유전자가 불과 5~6가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이러스가 옮겨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 상태에서 백신을 접종하자는 것은 위험스럽기 그지없다. 백신 접종은 구제역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장치가 되지 못한다. 백신 접종을 한 뒤 모든 가축에 항체가 생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이러스를 보유한 소·돼지가 상당수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 해당 소·돼지는 다른 가축이나 새끼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감염 경로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선진국은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다. 대만도 구제역 백신을 접종한 뒤 축산업이 거의 붕괴된 경험이 있다.
정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제역 예산 때문에 백신 접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백신 접종 이전에 발생 원인과 감염 경로 규명이 먼저다. 그리고 구제역 상시 발생국인 중국·베트남 등으로부터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철저한 방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순서다. 선진국처럼 제대로 된 방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손쉬운 대책이라고 성급하게 백신 접종을 추진하다가 자칫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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