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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학생까지 외면하는 ‘자사고’ 전면 재검토하라 |
정부가 마구잡이로 늘려놓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파행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내 자사고 26곳 가운데 1차 모집에서 미달을 기록한 13곳이 지난주 추가 접수를 받았지만 10곳은 끝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결원 규모는 전체 모집 정원의 20%에 가까운 858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일부 학교는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해 학교 운영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사고는 시교육청의 재정지원 없이 수업료와 재단 전입금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시·도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을 유예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애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원에 크게 미달한 자사고의 경우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재단이 전입금을 애초 예상보다 크게 늘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반고보다 몇배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부실한 교육을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교육청 등 교육당국은 자사고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엘리트 교육’만 강조하는 교육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시급하다. 이명박 정부는 평준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사고를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사고 지정을 시작해 2012년까지 100곳으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사고는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올해 초에는 일부 자사고의 사회배려대상자 전형에서 부정입학 의혹이 터져나왔다. 운영 과정에서는 ‘입시 위주 귀족학교’가 될 거라는 우려가 현실로 확인됐다. 특성화 교육을 명분으로 부여한 자율성은 입시교육을 마음껏 강화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이니 자사고에서 사교육이 도리어 늘어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1년 내내 말썽과 논란만 부른 자사고가 학생들한테 외면당하는 사태까지 왔다. 이제 이른바 ‘비인기’ 자사고들이 학생 유치를 위해 입시 위주 교육에 더 몰두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사고 정책은 이미 완전히 실패했다. 비록 늦었지만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엘리트 교육 강박증’을 버려야 한다. 수요 예측조차 제대로 못한 채 물량공세를 편다고 엘리트 교육이 되는 게 아니다. 점수 우수자가 곧 영재라는 편향된 시각도 함께 버려야 한다. 영재교육은 공교육의 내실을 강화해 모든 학생한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제공하는 게 전제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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