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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의혹의 몸통’ 놔둔 채 미봉된 ‘신한 사태’ |
신한금융지주가 어제 신한은행장 등 주요 경영진을 새로 뽑았다. 앞서 검찰은 그제 신상훈 전 신한지주 사장과 이백순 전 행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라응찬 전 회장을 무혐의 처리해 신한 사건 수사를 일단락했다. 신한으로선 이제 조직을 추스를 수 있게 됐지만, 그 뒷맛은 결코 깔끔하지 않다.
무엇보다 넉달간의 검찰 수사로도 신한을 둘러싼 의혹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수사에선 신 전 사장이 비자금 15억여원을 조성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 가운데 3억원을 이 전 행장이 라 회장 지시라며 받아갔다는 진술도 나왔다. 새벽 한적한 주차장에서 차량 트렁크에 현금이 담긴 여행용 가방을 실었다는 것이다. 현 정부 출범에 즈음해 벌어진 일이라니, 정권 실세에게 건네진 ‘당선 축하금’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렇잖아도 라 전 회장은 정치권 안팎에 폭넓은 인맥을 쌓아 이런저런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아온 터다. 문제의 돈이 그 빙산의 일각 아니냐는 의심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9월에 이미 신 전 사장에 대한 횡령 혐의 고소와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의혹 고발이 있었는데도 수사는 거북이걸음이었다. 압수수색은 11월 초에야 실시됐고, 수사는 대체로 서로 다투는 이들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었다. 그러는 사이 결정적 고리인 이 전 행장은 혐의를 부인하며 입을 닫았고, 신 전 사장에 대한 고소도 취하됐다. 미숙한 수사로 증거를 인멸하고 짬짜미를 할 시간만 줬다는 말을 들을 만하다. 뒤늦게 구속 등 압박수사를 하기로 한 방침을 검찰총장이 누설한 것도 한심하지만, 이를 핑계로 손을 놓은 수사팀의 행태는 더 어설프다. 그렇게 면죄부만 안기고 덮는다고 해서 의혹이 없어지진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로 거대 금융그룹의 후진적 양태도 확인됐다. 신한은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 것이 아니라, 라 전 회장 등 개인의 의사에 따라 휘둘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비자금을 제 돈처럼 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나 물고 뜯는 권력다툼에도 이사회는 아무런 견제 구실을 못했다. 스폰서나 사례금 따위 악습도 남아 있었다. 그런 풍토 탓에 비자금 따위 의혹과 내분 사태가 빚어졌을 것이다. 신한이 제대로 쇄신하자면 이런 의혹과 내분 요인부터 말끔히 청소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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