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전면전을 각오했던 미국이 계획을 바꾼 것은, 개전 초기 예상되는 사망자가 150만여명이라는 사실과 특히 미군 5만2000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 결과 때문이었다. 재작년 한국군의 워게임 결과는 개전 초기 사망자 220만~230만명이었다. 인명피해뿐일까.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추정한 전쟁 피해액은, 전비 3조달러, 복구비 1조달러, 재건에 2조7000억달러 등 모두 6조7000억달러였다. 승리하더라도 대한민국은 폐허다. 단지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부담은 막대하다. 한국을 손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우리 영해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다가, 단속하던 우리 해경에게 폭력을 휘두른 중국 선원들을 슬그머니 석방했다.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09년 이미 20%를 넘었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무역적자를 벌충하는 곳도 대부분 중국이다. 지금 북한만 중국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사활적 관건을 쥐고 있는 나라도 중국이다. 외국 언론이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안보는 미국 일변도인 이상한 한국 정부라고 빈정거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자 이제 정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안보 상업주의에 의지할 때는 지났다. 비이성적 선전선동과 야만적 광기가 활개칠 정도로 미개하지 않다. 군사력을 굳건히 하는 것을 말릴 사람은 없지만, 그걸 쓰지 못해 안달하는 정부를 곱게 봐줄 사람은 없다. 북핵은 국제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나, 남북의 화해협력은 남북이 해결해야 한다. 북쪽 당국은 솔직히 대화를 희망한다. 핵 포기를 이유로 시종일관 압박정책을 펼친 것은 이명박 정부다. 시민사회 원로들의 당부는 이렇게 모아진다. 남북은 선동과 광기를 버리고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라! 이 정권이 처음 내세웠던 실용 혹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이기도 하다. 남쪽 출신의 황동규 시인은 ‘삼남에 내리는 눈’에서 오늘과 비슷했던 120여년 전, 40여년 전 당대의 현실을 이렇게 비통해했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 북쪽의 시인 이용악은 두고 온 땅을 이렇게 그리워했다.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그리움’) 지극한 분노와 간절한 그리움은 상통한다. 오늘 우리의 심정이 그렇다. 저 눈 덮인 대지처럼 빛나는 평화의 땅을 꿈꾼다. 정부가 계속 어깃장을 놓는다면 국민이라도 앞장서 이끌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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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평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피워야 한다 |
삼남은 눈으로 덮였다. 겉으로나마 잠시 눈부신 평화다. 속절없지만, 이 평화가 진정코 이 땅의 속살로 스며들고 뿌리내리길 간절히 염원하며 신묘년 원단을 맞는다.
현실은 한겨울 칼바람보다 더 날카롭다. 북쪽에선 서해 5도 점령을 가상한 대규모 상륙훈련을 벌인다는 소식이다. 연평도 사태의 연장이다. 남쪽 정부는 북쪽의 변화 유도를 새해 정책 목표로 삼았다. 체제 붕괴를 떠올리는 것이니, 북쪽의 대응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충돌은 물러섰지만, 가파른 대치와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지난달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비태세에 들어갔다. 서태평양에 워싱턴호 등 미국의 3대 항모전단을 집결시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고 한다. 전쟁 직전까지 밀려갔던 1994년으로부터 불과 16년 만이다. 한반도의 긴장을 자신의 동북아 전략에 이용해온 미국이지만, 전면적인 충돌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북한과 대화의 문을 봉쇄한 한국 정부가 불편하다.
이런 상황을 중국 신문 <환구시보>는 “벼랑 끝을 축구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한국 정부”라고 했다. 단순한 비웃음이 아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당시 북쪽의 2차 도발을 억누르고 있었다. 중국이 한국을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 것도 이즈음이었다.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기도했던 교황(베네딕토 16세)의 성탄 메시지가 반갑지 않았던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낯뜨거울 뿐이었다.
세밑 진보·보수, 좌우를 막론한 사회원로들이 긴급성명을 내어 평화를 위한 노력을 남과 북 당국에 간절히 호소한 것은 이런 절박한 현실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나 정부의 닫힌 귀는 열리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을 언급하긴 했지만, 전후 맥락을 보면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미국과 중국을 의식한 체면치레용 같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평화는 생명이고 밥이다
1994년 전면전을 각오했던 미국이 계획을 바꾼 것은, 개전 초기 예상되는 사망자가 150만여명이라는 사실과 특히 미군 5만2000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 결과 때문이었다. 재작년 한국군의 워게임 결과는 개전 초기 사망자 220만~230만명이었다. 인명피해뿐일까.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추정한 전쟁 피해액은, 전비 3조달러, 복구비 1조달러, 재건에 2조7000억달러 등 모두 6조7000억달러였다. 승리하더라도 대한민국은 폐허다. 단지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부담은 막대하다. 한국을 손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우리 영해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다가, 단속하던 우리 해경에게 폭력을 휘두른 중국 선원들을 슬그머니 석방했다.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09년 이미 20%를 넘었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무역적자를 벌충하는 곳도 대부분 중국이다. 지금 북한만 중국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사활적 관건을 쥐고 있는 나라도 중국이다. 외국 언론이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안보는 미국 일변도인 이상한 한국 정부라고 빈정거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자 이제 정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안보 상업주의에 의지할 때는 지났다. 비이성적 선전선동과 야만적 광기가 활개칠 정도로 미개하지 않다. 군사력을 굳건히 하는 것을 말릴 사람은 없지만, 그걸 쓰지 못해 안달하는 정부를 곱게 봐줄 사람은 없다. 북핵은 국제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나, 남북의 화해협력은 남북이 해결해야 한다. 북쪽 당국은 솔직히 대화를 희망한다. 핵 포기를 이유로 시종일관 압박정책을 펼친 것은 이명박 정부다. 시민사회 원로들의 당부는 이렇게 모아진다. 남북은 선동과 광기를 버리고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라! 이 정권이 처음 내세웠던 실용 혹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이기도 하다. 남쪽 출신의 황동규 시인은 ‘삼남에 내리는 눈’에서 오늘과 비슷했던 120여년 전, 40여년 전 당대의 현실을 이렇게 비통해했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 북쪽의 시인 이용악은 두고 온 땅을 이렇게 그리워했다.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그리움’) 지극한 분노와 간절한 그리움은 상통한다. 오늘 우리의 심정이 그렇다. 저 눈 덮인 대지처럼 빛나는 평화의 땅을 꿈꾼다. 정부가 계속 어깃장을 놓는다면 국민이라도 앞장서 이끌고 가야 한다.
1994년 전면전을 각오했던 미국이 계획을 바꾼 것은, 개전 초기 예상되는 사망자가 150만여명이라는 사실과 특히 미군 5만2000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 결과 때문이었다. 재작년 한국군의 워게임 결과는 개전 초기 사망자 220만~230만명이었다. 인명피해뿐일까.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추정한 전쟁 피해액은, 전비 3조달러, 복구비 1조달러, 재건에 2조7000억달러 등 모두 6조7000억달러였다. 승리하더라도 대한민국은 폐허다. 단지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우리의 부담은 막대하다. 한국을 손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우리 영해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다가, 단속하던 우리 해경에게 폭력을 휘두른 중국 선원들을 슬그머니 석방했다.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09년 이미 20%를 넘었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무역적자를 벌충하는 곳도 대부분 중국이다. 지금 북한만 중국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사활적 관건을 쥐고 있는 나라도 중국이다. 외국 언론이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안보는 미국 일변도인 이상한 한국 정부라고 빈정거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자 이제 정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안보 상업주의에 의지할 때는 지났다. 비이성적 선전선동과 야만적 광기가 활개칠 정도로 미개하지 않다. 군사력을 굳건히 하는 것을 말릴 사람은 없지만, 그걸 쓰지 못해 안달하는 정부를 곱게 봐줄 사람은 없다. 북핵은 국제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나, 남북의 화해협력은 남북이 해결해야 한다. 북쪽 당국은 솔직히 대화를 희망한다. 핵 포기를 이유로 시종일관 압박정책을 펼친 것은 이명박 정부다. 시민사회 원로들의 당부는 이렇게 모아진다. 남북은 선동과 광기를 버리고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라! 이 정권이 처음 내세웠던 실용 혹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이기도 하다. 남쪽 출신의 황동규 시인은 ‘삼남에 내리는 눈’에서 오늘과 비슷했던 120여년 전, 40여년 전 당대의 현실을 이렇게 비통해했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 북쪽의 시인 이용악은 두고 온 땅을 이렇게 그리워했다.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그리움’) 지극한 분노와 간절한 그리움은 상통한다. 오늘 우리의 심정이 그렇다. 저 눈 덮인 대지처럼 빛나는 평화의 땅을 꿈꾼다. 정부가 계속 어깃장을 놓는다면 국민이라도 앞장서 이끌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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