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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희망을 주지 못한 ‘국정 4년차’ 대통령 연설 |
과거 대통령들도 임기 말에 다가갈수록 더욱 논쟁적으로 되는 경우가 있었다. 햇수를 거듭하면서 국정운영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나름대로 커지고, 치적을 평가받는 데 대한 초조감도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대통령들은 국정 과제의 틈새를 찬찬히 살피기보다는 고집을 외곬으로 밀고 나가곤 했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은 바로 그런 문제점을 잘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금년 전체 예산 중 복지예산의 비중과 규모는 사상 최대”라고 한 부분은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이다. 올해 예산은 국회의 정상적인 심의 없이 날치기 처리된 까닭에 갖가지 결함을 잔뜩 안고 있다. 심지어 집권여당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양육수당이 송두리째 누락되는 등 복지분야의 흠결도 수두룩하다. 이 대통령은 복지예산 총액을 강조하지만 실제 중요한 복지예산 증가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현실을 왜곡하는 눈속임에 가깝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복지를 중시한다면, 여야 정치권을 상대로 복지예산 보완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무상급식 등을 주장하는 야당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되레 공격하고 나섰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등을 놓고 정책 효율성을 따지는 토론은 언제든 가능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처럼 예산의 내용 자체를 왜곡해서는 성실한 정책 논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모처럼 복지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희망을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한반도 안보 불안이 심각하다. 남북 양쪽이 위기 요인을 제거하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안보 분야에서 워낙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그의 본심을 종잡기 어렵다. 그는 얼마 전 말레이시아 동포간담회에서 북한 붕괴 가능성을 거론하더니, 연말에는 새해 들어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을 언급했다. 어제는 구체적인 대북 대화 메시지를 제시하지 않고 고작 “대화의 문도 아직 닫히지 않았다”고만 했다. 이렇게 해서는 대통령 발언이 나라 안팎에서 영향력은커녕 신뢰감도 얻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오랜 관례인 새해 기자회견을 이번에도 건너뛰었다. 시민들의 궁금증에 적극 응답하지 않고 일방적 주장만 늘어놓는 것은 소통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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