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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장 몰이’ 하며 물가 안정 이루겠다고? |
새해 들어 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값이 꿈틀대고 국내에서는 공공요금과 생필품 가격 등이 껑충 뛰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엊그제 ‘물가와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갖고 물가 억제를 위해 노력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 하지만 크게 기대할 건 없을 것 같다. 정부가 말로는 물가 안정을 외치지만 실제 거시경제정책은 5% 성장 목표 달성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원자재와 부품 등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수입물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국내 물가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수입물가는 국제 원자재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11월 8.2% 오르는 등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환율 하락을 용인함으로써 수입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게 옳은 방향이다. 지난해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인 471억달러에 이르는 등 환율 하락 요인도 많다. 하지만 정부의 환율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수출 확대를 위해 환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떠받치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국내 물가 안정은 요원하다.
낮은 금리 수준도 주요한 물가 불안 요인 중 하나다. 한국은행은 국외 경제여건 불투명 등을 이유로 연 2.5%의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물가 안정보다는 성장 쪽에 치중하는 자세다. 경기가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물가 불안을 자극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이나 지급준비율 인상 등을 통해 과잉 유동성을 흡수해야 함에도 정부는 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 정책도 물가 안정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건물과 토지 가격이 오를 경우 부동산 임대료와 이자 등이 함께 올라 물가에 반영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건설회사를 살리고 건설 투자 확대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렇게 거시정책은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쪽으로 시행하면서 행정력을 동원해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겠다는 건 국민을 속이는 행태다. 정부가 진정으로 물가 안정을 이루려면 경제정책의 제1목표를 성장보다 물가 안정으로 잡고 그에 맞게 거시정책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공공요금 인상 억제, 식료품값 인상 시점 분산 등과 같은 미시적인 대책은 그다음에 내놓아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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