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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날치기한 여권, ‘정치복원’에서도 배짱인가 |
예산안 날치기 통과 이후 정치권에 형성된 한랭전선이 새해 들어서도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통제불능 상태가 되고, 안보불안과 물가불안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현안이 쌓여가는데도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전국을 도는 1차 천막투쟁에 이어 엊그제부터 2차 원외투쟁에 들어갔다. 여당 역시 국회 파행 상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국회 정상화 노력에 손을 놓고 있다.
지금의 국회 파행을 불러온 원인제공자는 누가 뭐래도 여당이다. 하지만 여권 수뇌부의 태도를 보면 느긋함을 넘어 배짱까지 부리는 기색이다. 연말 개각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 필요성이 생긴데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에 민주당이 합의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눈치다. 야당을 향해 ‘국회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오만한 태도마저 보인다.
날치기를 진두지휘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말 원내 종무식에서 “(날치기 처리를) 추호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데 대한 일말의 반성이나 성찰의 기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박희태 국회의장이 어제 야4당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결과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크게 자성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여권 수뇌부한테서 나온 유일한 유감 표명이다. 하지만 이 말 역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체면치레용에 불과해 보인다. 국회가 난장판인 상황에서 유럽 순방을 떠나는 데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것일 뿐, 국회 수장으로서 정치권의 화합을 위한 어떤 진지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정치복원을 어렵게 만드는 꼭짓점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 이 대통령은 새해 연설에서도 날치기 처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태도가 이렇게 요지부동이니 정치권의 대화 복원 노력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여권은 연평도 포격 사태 덕분에 날치기 처리로 빚어진 정치적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이제는 날치기 폭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사그라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다. ‘형님 예산’ ‘청와대 안주인 예산’ ‘복지혐오’ ‘4대강 밀어붙이기’ 등의 작태가 쉽게 잊힐 리 만무하다. 지금 여당은 야당이 아니라 국민들을 향해 배짱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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