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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만 쳐다보며 본래 임무 버리려는 공정위 |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내부 조직을 물가단속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인사·조직 개편안’을 내놨다. 사무처장 직속의 물가대책반을 구성하고 기존의 기능별 조직을 산업별·품목별 기구로 전환해 물가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그제 간부 직원들을 소집해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색출해 인사조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공정위를 도대체 어디로 끌고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공정위의 힘을 동원해 물가를 단속하겠다는 것 자체가 한심한 발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이런 식의 물가단속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50개 품목으로 ‘엠비물가지수’를 만들어 물가관리에 나섰고, 이후에도 행정력을 동원해 물가 낮추기를 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다. 이제 와서 새삼 공정위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아가 조직을 물가단속 기관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은 공정위의 존립 목적을 뒤흔드는 일이다. 공정위는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경쟁이 활성화하도록 시장의 규율과 질서를 확립하고 감시하는 곳이지 상품 가격에 일일이 개입하는 기관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국내 경제시스템은 1970~80년대의 관치경제로 돌아가게 된다. 공정거래의 책임자로서 김 위원장의 안목과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공정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초 물가안정을 강조한 뒤 모든 경제부처가 너도나도 물가안정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위해 인위적으로 유지해온 ‘고환율, 저금리’ 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물가를 잡을 수 있다. 환율 하락을 용인하고 금리를 올리면 공정위가 나서지 않아도 물가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공정위가 진정으로 민생 안정을 원한다면 본래 임무에 충실하면 된다. 대기업의 짬짜미(담합)와 불공정거래 관행을 적발해내고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를 막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에 손도 못 대고 담합 하나 적발하는 데 몇년씩 걸리면서 엉뚱한 데로 눈을 돌려선 안 된다. 물가단속은 공정위가 할 일이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조직을 뒤죽박죽 만들지 말고 본래 임무로 돌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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