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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간의 탐욕과 방심이 부른 ‘구제역 대재앙’ |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소·돼지 등이 100만마리를 넘어섰다. 하루에도 수천마리의 소·돼지가 계속 떼죽음을 당하지만 구제역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생매장당하지 않으려고 어미 곁에 바짝 붙어 바동대는 새끼돼지들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설상가상으로 닭이나 오리에 치명적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창궐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모든 동물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다. 인간이 소·돼지 같은 가축을 식용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먹이를 탐하지 않는 짐승과 달리 인간은 끝없이 먹이를 탐닉하며 욕심을 채우려 한다. 이러한 인간의 탐욕이 가축을 또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단순한 영양공급원으로 간주하면서 가축 사육은 ‘고깃덩어리 제조산업’으로 전락했다. 이처럼 인간이 가축을 탐욕의 대상물로만 인식하는 한 가축 바이러스의 역습은 피할 수 없다.
가축 바이러스의 재앙을 피하려면 반생명적인 밀집형 공장 사육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사육 공간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사육 마릿수를 제한하고, 사육장 내부 온도 기준, 오물 청소 주기 등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유럽 등지의 축산업 실태를 참고할 만하다. 풀밭이 부족하고 사료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축산업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육성해야 하는지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구제역 대재앙’ 이후의 국내 축산업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제역 등에 걸린 가축을 처리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살처분 가축이 적을 때는 주로 약물로 안락사를 시킨 뒤 땅에 묻었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약물이 바닥나 산 채로 매장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마리를 살처분해야 하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를 구덩이에 몰아넣고 흙으로 덮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약물이 확보될 때까지 살처분을 미루는 게 가능한지 등을 검토해 더는 생매장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구제역이 사실상 전국으로 확산된 상태여서 방역 강화를 말하는 게 무의미해져 버렸다. 방역과 확산 방지에 최대한 노력하되 허점투성이인 현행 방역체계를 전면 수정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지금같이 안이한 방식의 방역체계로는 우리나라 축산업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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