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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법관·헌법재판관 교체, 다양성 잃지 말아야 |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3분의 1이 올해 바뀐다. 대법원에선 이번주 양승태 대법관의 후임 제청을 시작으로,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홍훈·박시환·김지형 대법관 등 전체 14명 가운데 5명의 후임을 새로 정한다. 9명인 헌법재판관 가운데도 김희옥·이공현·조대현 재판관의 퇴임이 올해 예정돼 있다. 판결과 결정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만한 큰 폭의 변화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인적 교체에선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 과거 대법원과 헌재는 특정 학교 출신의 남성 법관 일색이었다. 애초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법조계에서도 더욱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들로 구성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구성을 제대로 반영하기는커녕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 인적 구성이 그나마 바뀐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사법 독립과 법원의 적극적 역할에 관심을 가진 법조인들이 새로 임명되면서 전향적인 판결과 결정이 여럿 나왔고, 진보 성향의 목소리가 소수의견으로라도 판결에 담겼다. 지금 대법원에서 그런 구실을 해온 몇 안 되는 이들은 올해 안에 대부분 퇴임한다. 그런 이들까지 ‘좌파’로 몰아 더욱 보수적인 인사들로 대신한다면 대법원은 과거처럼 한목소리 일색으로 치닫게 된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독식’을 부추기는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대법관 서넛을 두고 법원이 왼쪽으로 기울었으니 보수 쪽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심지어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황우여 의원은 ‘가능하면 모든 대법관을 기독교 신자로 채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특정 학교·지역 따위로도 모자라 이제는 같은 종교 출신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노릇이다. 그런 식으로 편가르기를 해서는 과거보다 더한 사법부 불신, 더욱 극심한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법관을 임명하는 대통령으로선 결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위험한 유혹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포함돼야 한다. 여성은 물론이고 변호사·교수 출신의 임명도 늘려야 한다. 판결과 결정이 전체 공동체를 실제로 규율할 수 있는 힘과 권위를 갖추자면 한목소리, 같은 색깔, 비슷한 얼굴이어선 안 된다.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온 사회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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