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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적 혼란만 부추기는 대통령의 ‘개헌 군불때기’ |
이명박 대통령은 겉으로는 “개헌은 정치권의 몫이다. 청와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딴판이다. 지난 23일 한나라당 핵심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뒤 개헌 관련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몇몇 언론을 통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 등이 전하는 형식이다. 엊그제에는 김황식 총리와의 주례회동 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역할 혼선을 막기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가 “그것은 김 총리의 발언”이라고 정정하는 소동도 빚었다.
이 대통령의 개헌 관련 발언은 교묘한 언론플레이 성격이 짙다. 누군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언론에 흘린 뒤 부인하거나 해명하는 행태가 되풀이된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략에 외곽을 때리는 술책이다. 이러다 보니 청와대 참모들과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특임장관 사이에 “고의적으로 대통령의 발언을 흘렸다”느니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의 뜻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싸움도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개헌이란 의제가 국민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훨씬 늘어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애초의 노림수라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을 국민의 기본권 확대에서 찾는 것은 실소를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번 당정청 회동에서 “개헌 논의에서 권력구조만 얘기되는데 그건 정략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보다 기본권 조항이 더 중요하니 이런 것도 다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 환경권 등 국민의 기본권이 곳곳에서 후퇴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평등권, 행복추구권, 경제민주화 등 헌법에 명시된 소중한 가치들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거나 현실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헌법 탓을 하기에 앞서 자신의 국정운영 잘못이나 뒤돌아볼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미 세종시 수정안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려다 당내 반발에 밀려 큰 낭패를 겪은 바 있다. 개헌론이 한나라당 안방 문턱도 제대로 넘기 힘들다는 사정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과거의 교훈을 까마득히 잊고 개헌의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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