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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 각료들, 구제역 수습 의지 있나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제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집주인이 도둑을 잡을 마음이 없는데”라며 구제역 방역에 나서지 않고 있는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이어 “일부 기업형 축산농가의 경우 보상비 수백억원을 형제들이 나눠서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민들이 정부 보상금을 타내려고 구제역 방역에 나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도대체 정부 각료로서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정부가 두 달이 넘도록 구제역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이제 와서 농민들 때문에 구제역이 확산되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구제역은 한 개인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수습할 수 있는 가축전염병이 아니다. 국가 차원의 총력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막을 수 없는 제1종 법정 전염병이다. 그러니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반세기 만에 최악의 구제역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며 각국 검역당국에 경계령을 내린 것 아닌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태도 역시 안이하기 짝이 없다. 그는 “구제역 사태를 조속히 종식시키고 모든 상황을 말끔히 수습한 다음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 장관의 거취를 거론하는 것은 단지 도덕적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구제역 방역 사령탑으로서 두 달 동안 보여준 그의 수습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공연히 정부를 흔들고자 하는 게 아니라 사태의 조기 수습을 위해서라도 현직 장관이 물러나고 새로운 사령탑이 구성돼야 한다.
지금 방역 현장에선 구제역을 막으려는 농민들과 방역 당국자들이 밤잠을 자지 못하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가축 270여만 마리가 매몰되면서 상당수 방역 담당자들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당연히 모든 정부 각료들이 구제역 종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작 관계 장관들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거나 ‘매뉴얼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남의 탓만 늘어놓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매뉴얼이 다 해결해준다면 장관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런 정신상태로는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각료들부터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방역 사령탑도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을 모면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오로 구제역 차단에 나설 수 있다. 현재의 사령탑엔 이미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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