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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허울뿐인 ‘대통령과의 대화’, 이제 그만하라 |
이명박 대통령이 설 연휴 전날인 내일 아침 방송에 나와 1시간30분 동안 신년좌담회를 하기로 했다. 좌담회 기획과 대담자 교섭 등 모든 것을 청와대가 주도하고, 방송 3사는 그저 생중계만 할 예정이라고 한다. 말이 좌담회지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는 일방적인 홍보 방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의 후진적이고 권위적인 ‘대통령과의 대화’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우선 좌담회 기획 과정부터가 문제다. 이번 좌담회는 대담 주제와 방송작가 및 2명의 대담자 선정 등 모든 기획과 연출을 청와대가 맡아서 하고 있다. 자기들이 말하기 편한 주제를 정하고, 까칠하지 않고 무난한 대담자와 함께 화기애애한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속셈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사실상 청와대가 방송 제작 기능까지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독립성과 방송의 편성권을 아예 깔아뭉개는 오만한 처사다.
방송카메라를 메고 청와대로 들어가 그저 좌담회 생중계만 하겠다는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좌담회를 방송 3사가 동시에 생중계하겠다는 것은 전파 낭비일 뿐 아니라 시청자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독립된 언론으로서의 한 가닥 자존심이라도 있다면 이런 식의 홍보성 관제 중계방송은 단연코 거부해야 한다.
일방적인 좌담회 주제 선정은 더 문제다. 대통령은 좌담회에서 외교·안보와 경제 분야에 대해 주로 얘기하겠다고 한다.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입맛에 맞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국민과 대화하겠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발상이다.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더욱이 대담자로 선정된 두 사람은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장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과 달리 유독 쌍방향 소통을 꺼린다. 취임 이후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손을 꼽을 정도다. 그것이 개인적인 스타일 탓이건 정치적인 판단 때문이건 결코 바람직한 행태는 아니다. 더욱이 이번 좌담회처럼 친정부적인 방송 환경을 활용해 일방적인 홍보성 주장만 쏟아내려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국민과 터놓고 모든 현안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하는 게 그렇게 두려운가. 아니면 국정 운용에 자신이 없어서인가. 허울뿐인 ‘대통령과의 대화’는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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