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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계파 정치’ 용도로 헌법을 이용해선 안 돼 |
한나라당이 8~10일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자는 합의안을 끌어내겠다고 한다. 그러나 야당이 지금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를 극력 반대하고 여당에서도 내부 이견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해 방송좌담회를 통해 개헌 논의를 주문하고 나섰지만 생산적 논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 것은 무엇보다 개헌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쪽은 진작부터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한테 상당 부분 분산하는 이원정부제 개헌을 선호해왔다. 이렇게 하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일치되어야 하는데 마침 2012년에 총선과 대선을 8개월 사이를 두고 치르게 돼 있다. 이 대통령이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의 임기 단축도 고려할 수 있다고 하면 그 논의에 폭발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 쪽은 이와 비슷한 언급도 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이 대통령이 개헌 여건 조성 차원에서 거론하는 국회의원 선출제도 개편도 마찬가지다. 영남과 호남에서 여야 의원들이 교차 당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데는 야당도 이견이 없다. 그러니 이 대통령이 걷어붙이고 나서 여당부터 제도 개편안을 만들라고 추동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역시 말뿐이다. 이런 식으로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잔치를 신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한테 개헌안 발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이 개헌할 뜻이 있다면 자신의 주도로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는 게 성실한 자세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때 개헌을 제안하고 △열린우리당 개헌특위 간담회 △개헌시안 발표 특별 기자회견 △정부 헌법개정추진지원단 공청회 등의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자기 할 도리는 전혀 하지 않고 국회가 논의를 주도해 달라면서 연기만 피우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진정성도 없이 자신의 계파 결속용, 권력 누수 방지용으로 개헌 쟁점을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나라당의 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어제 개헌 토론회를 열었다. 그런데 논의에 참여한 의원들 가운데서도 개헌의 현실성을 믿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원들도 결국 계파 정치 용도로 헌법을 활용하는 데 들러리서는 꼴 아닌가. 시민들의 정치 불신을 심화시키리라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행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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