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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 식구 인권조차 무시하는 인권위 |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래 제구실을 못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가인권위원회의 행태가 갈수록 태산이다. 현 위원장을 비롯한 인권 비전문가들이 인권위를 점령한 뒤 중요한 인권의제에 눈감으면서 인권 퇴행을 방조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실무 전문가들마저 내쫓으려 하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달 28일 일반계약직 공무원 재계약 심사에서 강인영 조사관에 대한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게 공식 설명이었지만,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인권위지부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고용상 차별”이라며 어제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강 조사관이 노조 부지부장으로서 현 위원장 체제에 대한 비판 활동을 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그동안 지부와 교류하거나 교섭한 적이 없고 설립 신고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인권위엔 노조가 없다고 주장했다. 2009년 5월 전공노의 한 지부로 인준받아 6급 이하 일반직·계약직 직원의 이익을 대변해온 노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권위의 이런 태도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우선 강 조사관에 대한 계약 연장 거부 이유가 설득력이 없다. 인권위의 말대로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면 연장을 거부할 게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면 된다. 그는 인권위 설립 초부터 정책·조사부서에 근무하면서 서울지검 피의자 사망사건, 서울구치소 수용자 사망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서 큰 성과를 낸 베테랑 조사관이다. 더군다나 그가 재직하고 있는 차별조사과는 그가 나가면 전문조사관 하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도 기어이 내보내려고 하니 비판 활동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의혹 해소에 나서는 게 인권위의 마땅한 도리다. 하지만 인권위는 엄연한 실체로 존재해온 노조를 부인하고 나섰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망발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 장애인,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태어난 조직이 노동자의 단결권을 부인한 꼴이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인권위에 제소당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인권 문외한들이 좌지우지하는 지금 체제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부끄러운 사태에서 벗어나려면 하루빨리 인권위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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