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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물가, 언제까지 남 탓만 할 건가 |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다. 국제 원자재값 등 외부 요인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농축수산물의 공급 불안, 국제유가 상승 등 공급 부문의 물가 충격이 예상보다 컸다. … (우리나라만이 아닌) 글로벌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휘발유값과 통신비가 물가상승의 주범인 양 시장구조를 손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물가정책 실패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휘발유값과 통신비가 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국제 곡물값과 원유값 상승이 국내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물가상승 원인을 외부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농산물과 석유류 등 공급 불안 요인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지난해 11월 1.8%, 12월 2%, 올해 1월 2.6%로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게다가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 회복과 함께 수요 증가에 의한 물가상승세가 언제든 본격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탈출을 위해 각국이 뿌려놓은 자금도 시중에 넘쳐나고 있다. 이런 자금은 물가상승뿐 아니라 원자재에 대한 투기, 주식과 부동산 등의 자산거품까지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제 곡물값과 원자재값이 오르는 것도 달러가치 하락, 투기자본의 유입,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수정해 통화량 환수와 수입물가 하락에 나서지 않는 한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지난해부터 예견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거의 한해 동안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대책이 필요할 때는 손놓고 있다가 뒤늦게 일이 터지자 남 탓만 하는 꼴이다. 내놓은 대책도 농산물 공급 확대, 관세 인하, 가격정보 공개, 경쟁 촉진, 유통구조 개선 등 지난해 가을부터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온 것들이다. 특히 경쟁 촉진과 유통구조 개선 등은 장기 과제여서 당장 물가를 잡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제라도 물가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모든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 물가대책 가운데 하나라도 실효성 있는 내용이 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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