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영화인 열정 ‘착취 구조’ 바꾸고, 안전망 확보해야 |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에 대한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32살의 그는 밥과 김치를 달라는 애절한 메모만 남기고 차가운 월세방에서 숨졌다. 여러 날 굶은 상태에서 지병 치료를 받지 못해서다. 지난 연말에는 젊은 음악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숨졌다. 최씨는 메모에서 자신의 처지가 창피하다고 했지만,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젊은 예술인들을 이렇게 죽게 만드는 우리 사회다.
최씨의 처지는 우리 영화 종사자들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그는 국내외 단편영화제에서 입선한 유망한 영화인이었으나 벌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사에 넘기더라도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고료를 다 받지 못하는 잘못된 관행 탓이다. 고작 계약금 이삼백만원 정도로 버텨야 하는 시나리오 작가는 많다고 한다.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른 영화 종사자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영화산업노조의 조사로는 2009년 영화 스태프의 연평균 소득이 623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몇 달씩 체납되기 일쑤다. 노조에 접수된 2009년 임금체불액만 17억여원이다. 상당수는 신고조차 꺼린다니 실제로는 더 심할 것이다. 영화계의 불황 때문이라지만 그 피해가 약자인 시나리오 작가나 젊은 스태프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꼴이다. 꿈과 열정을 착취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정부 책임도 작지 않다. 2006년 영화진흥기금을 신설할 때 정부는 ‘영화 현장인력의 처우 개선과 전문성 제고’를 명분의 하나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여기에 쓰인 돈은 전체 기금의 6.1%인 27억원 정도였다. 올해 기금에선 시나리오 개발 등에 들어가는 기획개발비 지원예산 12억원이 전액 삭감됐다. 신인 작가의 등용문인 시나리오 마켓 예산도 지난해 없어졌다. 영화인들의 처우는 지난 몇 년 사이 더욱 열악해졌다.
‘제2의 최고은’을 막자면 이들에 대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논의는 이미 있었다. 창작인들에게 각종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돼 있고, 실업부조금과 퇴직공제 제도를 도입하자는 노조의 제안도 있다. 진작에 이런 복지정책을 시행했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뒤늦긴 했지만 어제 정부는 문화 안전망 구축을 다짐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