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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동 민주주의 새날 연 ‘이집트 시민혁명’ |
이집트의 30년 독재 철옹성이 마침내 무너졌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집트인들의 목숨을 건 투쟁 앞에 무릎을 꿇고 지난주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무바라크의 퇴진은 중동지역 나라들의 권위주의 체제 해체와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에 이은 이집트 시민혁명은 알제리, 예멘 등지의 민주화 요구 움직임을 촉발하고 있다. 일부 나라에선 비상사태를 해제하거나 내각을 개편하는 등 사태의 파급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처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집트 시민혁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무바라크 퇴진을 민주혁명으로 완성하려면 수많은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30년 동안 지속돼온 무바라크 체제의 해체 문제가 쉽지 않다. 과도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나 군 최고위원회는 무바라크 체제의 기득권자들이다. 특히 술레이만은 무바라크의 충복이자 미국의 하수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민주화에 헌신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군부의 구실 역시 낙관을 불허한다. 군 최고위원회는 민간정부로 질서있는 권력 이양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군부의 권력 장악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야권이 분열해 서로 각축하는 혼란 상황에서도 군부가 계속 중립적 태도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시민혁명을 이끈 세력들의 현명한 처신이 중요한 시기다. 눈앞의 권력을 차지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며, 국민적 신망을 얻는 인사들로 대안세력을 빨리 구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집트 민중들의 상당한 지지를 확보한 무슬림형제단을 억지로 배제하려 해선 안 된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란과 같은 신정을 거부하고 다원적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지지를 밝히고 있다. 이런 정치세력을 민주주의 체제 안에 끌어들이는 것이 오히려 전투적 이슬람근본주의의 확산을 막는 길이다.
이 점은 새 중동질서 앞에 서게 된 미국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집트 국민의 희망과 다른 정권을 창출하려 하다가는 도리어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아랍권의 진정한 관계는 민주화 과정에 대한 전폭적 지지에서 형성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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