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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립성 잃은 검찰의 초라한 자화상 |
요즘 검찰이 뒤숭숭하다. 한화그룹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불법 수사지휘를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남기춘 당시 서울서부지검장이 이에 불복하는 바람에 보복인사의 대상이 돼 결국 사퇴한 것이라는 얘기가 이어진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에도 이 장관이 한나라당 관계자들에 대한 울산지검의 선거사범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다. 이런 일들은 모두 김준규 검찰총장을 제쳐둔 채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선지 검찰 내부의 세력다툼, 청와대의 의중 따위가 배경으로 거론된다.
의혹들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황을 살펴보면 사실일 개연성은 커 보인다. 장관이나 법무부의 의견 표명일 뿐이라지만, 일선 검찰로선 이를 지시나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을 터이다. 더구나 논란이 된 사건은 재벌그룹의 로비가 맹렬했거나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의 반발이 컸던 수사였다. 법무부 장관이 그런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뜻대로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려 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행법은 이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검찰청법 등은 장관의 개별 사건 지휘는 검찰총장을 통해서, 그것도 서면으로만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무직인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자칫 권력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최소한의 장치다. 의혹대로라면 이 장관은 명백하게 법을 위반했다. 진상을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에선 장관의 음성적인 수사지휘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장관의 수사지휘가 수시로 이뤄졌다고 말한 전직 검찰총장도 있다. 이번 일은 그런 일상화된 불법 수사지휘를 따르지 않은 검사에게 보복인사를 하려 든 탓에 더 크게 불거졌다고 한다. 불법 수사지휘가 검찰 안에서 용인돼왔다면 이는 이를 통해 전해지는 권력의 눈치를 본 때문일 것이다. 검찰 스스로 독립성과 공정성을 내팽개친 꼴이다.
보복인사는 더 흉하다. 이명박 정부는 권력의 뜻을 좇아 법리나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검사들을 대놓고 영전시키는 등 인사를 통해 검찰을 마음대로 휘둘러왔다. 이젠 인사로 보복까지 하려 했다니, 검찰의 독립성과 자존심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행태다. 그런 권력도 문제지만, 검찰을 이런 초라한 지경에 이르도록 한 검찰총장의 무능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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