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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구멍 뚫린 외교’ 실상 보여준 ‘상하이 총영사관 파문’ |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몇몇 외교관이 중국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정보와 자료를 넘겨준 사실이 드러났다. 치정으로 소란이 벌어지면서 관련된 영사들이 조기에 귀국하기도 했다.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들이 임지에서 불륜 소동의 당사자가 됐으니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이번 파문은 외교관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 그칠 일이 아니다. 문제된 중국 여성은 한국인 남편도 구체적인 신상 명세를 모를 정도로 정체가 모호한 인물이라고 한다. 외교통상부는 사업가나 브로커일 것으로 보고 있다지만, 중국 정보기관 등에 소속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목적을 지니고 접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당연하다. 상하이 총영사관의 외교관들은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 이런 인물과 불륜 관계를 맺거나 밀접한 친분을 유지했다. 자칫 약점이 잡힐 만한 상황이다. 치명적인 정보 유출 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이번 일이 결코 개인 간 애정 문제일 수 없는 이유다.
어떤 정보가 유출됐는지도 문제다. 이 여성에게 유출된 자료에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휴대전화번호 등 연락처, 외교부 인사 관련 문서, 상하이 총영사관 비상연락망, 비자 발급 자료 등이 있다고 한다. 정부기관의 내부 기밀이거나 외부로 흘러나가선 안 될 정보들이다. 확인된 내용 가운데는 사진 자료를 자세히 정리한 문서도 있다. 적극적인 정보 수집의 흔적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정보·기밀의 유출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국가기밀 등 중요 정보가 유출됐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제로 유출된 정보가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하지 못하는 듯하다. 앞뒷문이 다 열려 있는데도 모르는 꼴이다.
상하이 총영사관은 이 여성으로부터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고위층 인사와의 면담이나 어려운 민원 등을 여럿 해결해줬다는 것이다. 외교 업무가 꼭 공식 경로로만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정체도 불분명한 이에게 그렇게 크게 의존해야 할 정도라면, 장기적인 관계까지 다지는 탄탄하고 실속있는 외교가 이뤄지긴 어렵다. 그렇잖아도 한국 외교는 여러 나라에서 주재국과의 밀접한 관계 형성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무성한 터다. 이런저런 면에서 이번 일은 우리 외교의 부실한 실상을 드러낸 부끄러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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