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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준기 안보 동영상’, 내용·형식 모두 치졸하다 |
정부가 천안함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으로 안보교육 동영상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황당무계한 내용인데다 군복무중인 영화배우 이준기씨를 등장시킨 까닭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방홍보원은 18분짜리 ‘청소년용 정부표준 안보영상물’을 만들어 지난 7일부터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돌렸다. 이 영상물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우리 국민 갈라놓기’를 제시하면서 이준기씨를 내세웠다. 검은 베레모를 쓰고 ‘일일 안보교사’로 나선 그는 “국민 모두가 안보상황을 제대로 알고 한마음 한뜻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문을 연다.
이어 소년 목소리의 만화 캐릭터가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를 둘러싼 논란을 거론한다. 이 목소리는 “선진 각국 권위자들이 참여해 밝혀낸 것들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갈라놓았지”라며 “만약 그때 그렇게 싸우지 않고 우리 국민이 힘을 합쳐서 철저히 대비했더라면 연평도 도발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라고 주장한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이준기씨가 마무리 발언을 한다. 문제의 내용과 이씨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오버랩시킨 것이다.
이 동영상은 정부 중심의 일방적인 인식을 담고 있다.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둘러싸고는 유엔안보리에서 우리 국회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거셌다. 아직도 논란이 매듭지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우리 사회의 천안함 논쟁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비약이다. 이런 내용을 청소년들한테 주입하는 것은 비교육적일 뿐 아니라 안보태세 강화에도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
입대한 연예인의 이미지를 군당국이 멋대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와 시민사회 일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천안함 논란에 대해 이준기씨 자신이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는 2008년 촛불시위를 지지했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도 미니홈피에 올린 바 있다. 누리꾼들은 그를 ‘개념 연예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만약 본인의 자유의사와 달리 홍보 동영상에 동원된 것이라면 반인권적인 ‘이미지 수탈’이라고 할 수 있다.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운 병사라는 약점을 이용해 연예인의 고유 이미지와 자기 신조에 반하는 홍보활동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한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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