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덩 여인’의 인권은 멋대로 유린해도 되나 |
한 중국인 여성이 상하이 총영사관 소속 영사들과 불미스런 관계를 맺고 정보를 수집한 일과 관련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 여성 남편의 진정에서 시작된 사건은 젊은 여성 한사람에게 휘둘린 한국 외교의 수준과 외교관들의 자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이 여성 및 사건의 실체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합동조사를 시작하고 중국 쪽도 이 여성에 대해 조사한다니 그 결과를 기다려볼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다루는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초기부터 우리 언론의 대부분은 이 사건을 ‘마타하리’ ‘색계’ 등과 비교하며 성을 이용한 간첩사건처럼 끌고 갔다. 또 연루된 영사들은 성만 밝히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한 반면 이 여성의 실명은 그대로 공개하고 얼굴도 가감없이 내보냈다. 이에 대해 이 여성 남편은 공직 기강을 잡아달라고 했더니 아내를 꽃뱀으로 몰고 간다며, 사진을 쓸 거면 영사들에게 초점을 맞춰야지 왜 자신의 아내에게 맞추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유 있는 항변이다.
신문윤리강령 실천요강은 범죄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명예와 인격을 존중해야 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보도할 때는 공익과 공공성을 고려해 최소 범위에 그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여성은 확정된 피의자도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 여성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게 공익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불륜이 개재된 사건과 관련한 이런 식의 보도행태는 선정성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한 보도행태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되풀이되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몇해 전 신정아-변양균 사건 당시 여성계는 우리 언론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꽃뱀에게 물린 불쌍한 남자’의 도식으로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 보도 역시 같은 구도로 가고 있다. 남성 중심적 편견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또다른 문제점은 이 여성이 중국인이라는 데 있다. 우리 언론들의 경솔한 보도태도가 그렇잖아도 뒤뚱거리는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없지 않다. 당장 중국 언론들은 이 여성을 간첩으로 몰고 가는 우리 언론의 보도를 중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여성과 외국인의 인권에 대해 좀더 사려깊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