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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상률 수사, 뭐가 켕겨 계좌추적도 않나 |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여러모로 비정상이다. 애초 한씨가 검찰 조사도 받지 않은 채 2년 가까이 외국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달 한씨가 갑자기 귀국한 뒤에는 소환조사와 압수수색이 벌어졌지만, 실제 수사는 보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무엇보다 검찰은 한씨와 주변 인물에 대한 계좌추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상적인 검찰 수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씨는 인사청탁을 위해 고가의 그림을 상납하고 권력 실세에게 연임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 간부에게 승진을 대가로 수억원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있다. 압수수색에선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림 10여점까지 나왔다. 뇌물수수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사건 수사에서 계좌추적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계좌추적을 통해 수사의 단서나 범죄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조차 하지 않는다면 수사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을 억지로 덮으려 하거나 일부러 봐주려 한 것 말고 다른 이유를 떠올리기 어렵다.
그러잖아도 한씨는 정권의 약점을 쥔 사람으로 꼽혀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차명소유 의혹이 일었던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지시하고 그 내용을 청와대에 직보했다는 의혹도 있다. 현정권 실세들이 그로부터 거액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도 여전하다. 하나같이 사실로 드러나면 엄청난 폭풍을 몰고올 만한 일이다. 한씨의 외국 체류와 갑작스런 귀국을 두고 추악한 거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터에 검찰이 수사의 기본을 무시하면서까지 한씨의 혐의를 대놓고 외면한다면 권력을 의식한 ‘면죄부 수사’라는 의심과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검찰은 그렇게 의심할 만한 잘못을 이미 많이 저질렀다. 2년 전 한씨의 불법 혐의가 드러났을 때 검찰은 한씨가 출국할 때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뇌물수수 등 한씨의 혐의가 추가로 폭로됐을 때도 범죄인 인도 요청을 미적대기만 했다. 이달 초 검찰의 압수수색도 관련 진술이 나온 지 2년 뒤에야 뒤늦게 벌인 것이다. 하나같이 검찰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더한 잘못을 저질러 국민의 신뢰를 영영 잃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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