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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정질서의 중대 ‘공익’을 훼손한 ‘엑스파일’ 판결 |
대법원이 이른바 ‘안기부 엑스(X)파일’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기자들에게 그제 유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안기부 엑스파일에는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와 검찰 간부 10여명에게 돈을 주는 일을 의논하는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안기부가 이런 내용을 불법 도청했다는 사실이 2005년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지만, 정작 정경유착 및 검찰 매수를 모의한 사람들과 ‘떡값 검사’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되레 이를 폭로한 기자들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으니 어처구니없는 부조리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국민의 알권리보다 통신비밀의 보호를 앞세웠다. 대법원은 불법 도청으로 수집된 내용을 보도한 일이 정당화되려면 “불법 도청을 고발하기 위한 불가피한 보도이거나 그 내용이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 등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 기준이 꼭 맞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 기준에 비춰도 이번 판결은 이해하기 어렵다.
엑스파일의 내용은 재벌과 언론사의 최고위 인사가 대선과 검찰 조직에 돈을 뿌려 불법적으로 영향을 미치려 한 것이다. 선거라는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위협하고 국가기관의 오염을 기도했다는 점에서 국가적인 중대 공익과 관련된 문제다. 대법원은 “8년 전의 일이라 공적 관심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정경유착의 위험 등이 당시에도 작지 않았고 여론의 관심 등 사회적 파장도 컸으니 시의에 어긋난 보도가 결코 아니다. 이들 보도는 불법 도·감청 문제를 공론화한 기폭제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이를 공익과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문제된 공익의 중대함으로 보면 공직자 등 공인인 이들의 실명과 대화내용을 공개한 것도 불가피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 터에 법원이 보도 방법이 지나쳤다는 등의 잣대로 유죄를 선고한 것은 억지스럽다.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비리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사명이다. 언론은 이를 통해 민주질서와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구실을 맡는다. 그런 당연한 일을 한 언론을 자의적인 기준으로 재단하려 든다면 언론자유의 훼손은 불 보듯 뻔하다. 그것이야말로 공익 훼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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