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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한미군 해외 차출, 한-미 협의 제대로 했나 |
한국에 주둔중인 미 2사단 수색대대 병력 500여명이 다음달 5일부터 필리핀에서 실시되는 미국-필리핀 연합훈련에 참가한다고 미8군 사령부가 엊그제 밝혔다. 그동안 주한미군 병력이 몇십명 안팎의 작은 규모로 해외 훈련에 참가한 적은 있지만 단위부대가 파견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 전략에 따라 미군을 차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군을 한 지역에만 붙박이로 두지 않고 신속기동군으로 운영하겠다는 전략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해외 미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이러한 정책 변화를 추진해왔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대북 억지력으로만 묶어두지 않고 투입 범위를 넓히고 싶어한다.
그런데 미군이 우리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한국의 주둔기지에서 해외를 자유로이 출입하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본의와 달리 제3국 분쟁에 연루되거나 불필요한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긴장요인들이 워낙 미묘하게 얽힌 만큼 이런 측면을 깊이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중국은 주한미군의 자국 견제 구실을 날카롭게 경계하고 있다.
한-미 두 나라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 2006년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원칙에 합의했다. 여기서 한국은 미국의 세계군사전략 변화를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기로 했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런 원칙을 이행하기 위한 관리 절차 등이 그 뒤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점이다. 가령 지난해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적용할 때 사전협의 제도화를 요구한 반면에 미국은 통보만 하겠다고 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일과 관련해선 미8군 사령부가 수색대대의 훈련 참가 사실만을 간략히 발표한 게 전부다. 한미연합사, 우리 국방부 어디에서도 관련 경과를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단위부대급이 이동하는데도 우리 쪽이 사전협의를 하지 못하고 일방통보만 받는다면 정상이 아니다. 두 나라 군사당국이 충실히 협의하고 경과를 밝혀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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