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국세청의 도 넘은 ‘한상률 비호’, 이유가 뭔가 |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해외도피 중이던 지난해 국세청 직원을 통해 20여개 기업으로부터 5억~6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전 청장은 이 돈을 ‘정상적인 자문료’라고 주장했다. 믿기 어려운 해명이다. 그는 물의를 일으켜 중도하차한 뒤 도망치다시피 출국해 장기간 외국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이다. 굳이 이런 이에게 자문할 일이 있겠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기업들이 자청해서 그런 거액을 줬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국세청 직원이 직접 나서서 돈 심부름까지 했다니 더욱 이상하다. 뭔가 구린 사연과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연임 로비 등의 혐의로 고발됐지만, 세간의 관심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차명소유 의혹이 있는 서울 도곡동 땅의 진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세무조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등을 알 수 있는 핵심 인물로 꼽혀왔다. 의혹대로라면 정권의 약점을 단단히 쥔 사람이다.
그런 사정 때문에 한 전 청장의 비리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많다. 실제로 그가 재임 중 부하 국장에게 거액을 요구했다는 증언이 진작에 나왔고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파다했는데도 검찰은 수사를 미적대기만 했다. 한 전 청장 등에 대한 계좌 압수수색도 수사에 착수한 지 보름이 훌쩍 넘어 여론의 질타가 있은 뒤에야 뒤늦게 청구했다.
그런 터에 국세청의 비호 의혹까지 드러났으니 더욱 의심스럽다. 국세청 직원들은 한 전 청장에게 돈을 보내도록 기업들에 요구하거나, 직접 돈을 건네받아 송금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개인적 인연으로 할 만한 일을 넘어섰다. 국세청이 조직 차원에서 한 전 청장에게 돈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이유를 따져야 한다.
국세청은 검찰 조사를 받은 직원에 대해 감찰 부서에서 진술 내용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수사를 받는 국세청 직원들이 제대로 진술하기 어렵다. 조직적인 수사 방해로 볼 만한 일이다. 정권 차원의 비호 공작까지 의심된다. 의혹을 덮으려다간 더한 의혹과 불신을 낳게 된다. 국세청은 이제라도 진실 규명에 협조해야 한다. 검찰도 더는 머뭇대거나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