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박근혜·민주당의 무책임한 ‘신공항 계속 추진’론 |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발표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원인을 제공한 쪽은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이다. 표만 의식해 경솔하게 선거공약을 내걸었고, 그 뒤 사업 타당성이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결정을 미뤄 혼란을 증폭시킨 책임이 크다. 이 대통령이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얼마나 통절하게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런데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상당수 영남권 정치인들, 그리고 민주당 등이 어제 동남권 신공항 계속 추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한 비판을 넘어 계속 추진까지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자칫 신공항 난맥상을 매듭짓는 게 아니라 국가적 혼란이 깊어지도록 할 가능성마저 염려된다.
이들은 “국제화와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물동량의 확대” 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다. 공항시설을 적기에 확충해 미래의 초과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초과수요가 아니라 초과공급이 더 문제다. 경부고속철도의 확장 등 육상 교통여건이 빠르게 개선되는 바람에 영남권의 항공 물동량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이 때문에 김해공항을 제외한 대구·사천·포항·울산 등 나머지 4곳은 모두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중·일 국제노선의 확충에 대비하는 데도 김해와 대구 두 국제공항만으로도 충분하다. 김해공항의 연간 여객처리 능력은 1350만명인데 지난해 이용객은 700만명도 안 됐다. 최근 5년 동안 화물기가 투입된 노선은 겨우 3편뿐이다. 이런 사정은 지금뿐 아니라 미래에도 상당기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기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2 허브공항’을 짓는다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중복 과잉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출신지역 유권자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박 의원과 같은 유력한 대선주자, 그리고 정권을 교체해 국정을 다시 맡아보겠다는 제1야당쯤 된다면 그 행동은 달라야 한다. 특정 지역의 욕구가 있더라도 국가 전체적인 보편성이 약하다면 때로 지역민들이 자제하도록 설득할 줄도 알아야 한다. 동남권 신공항은 세종시와 달리 국토 균형발전 기여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들의 행동은 책임감 있는 국가 지도력에 어울리지 않는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