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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내부거래로 ‘뒷주머니’ 채우는 재벌 2세들 |
정부가 재벌의 계열사를 통한 변칙 상속과 증여 행위에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실태를 보면 정부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굼뜰 뿐만 아니라 분명한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 순위 30대 그룹 가운데 소유주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거의 절반(46.1%)에 이른다. 이는 전체 계열사 평균 비율인 28.2%를 훨씬 웃도는 수치로, 재벌 계열사들이 소유주 자녀가 대주주인 비상장사에 거래 물량을 대거 밀어줬음을 의미한다. 한 예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2세가 지분 18.61%를 보유한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지난해 총매출에서 계열사간 거래액이 97.5%를 차지했다. 재벌 계열 20개 비상장사의 매출 실적이 5년 사이 3.27배로 늘었다고 하니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한 셈이다.
경영권 승계의 통로로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하는 건 재벌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삼성·현대를 비롯해 거의 모든 재벌이 2, 3세가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그로 인해 회사 가치가 급등하면 주식을 공개해 큰 자본이득을 취했다. 재벌 2세들은 그렇게 편법으로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을 상속받고도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았다. 재벌들이 사회경제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장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정부도 말만 앞설 뿐 방관하다시피 했다.
정부는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가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하므로 과세 근거는 충분하지만 과세 요건과 방안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감 몰아주기를 부당지원 행위로 규정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이어 최근 상법 개정으로 회사 기회를 유용한 이익은 부당이익으로 확정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과세를 위한 근거 규정들은 정비된 상태인 만큼,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회사와 주주 이익의 편취를 막을 수 있다.
정부는 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고 상속·증여세법과 공정거래법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 이미 많은 재벌들이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상속·증여를 마친데다 과세 방침이 알려진 만큼 편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비상장기업의 적정 주식가치 평가를 위해 지배주주와 독립된 평가위원회를 두는 방안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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