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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파업노동자가 흉악범인가 |
검찰이 파업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노동자들의 디엔에이(DNA) 시료를 채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대상은 쌍용자동차 파업과 대림자동차 점거농성 등에 참여했던 노동자들로, 지난달부터 전국 지방검찰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인권침해 요소가 클 뿐 아니라 노동운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무리한 법 적용이다. 당장 중단해야 한다.
디엔에이 채취의 법적 근거는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디엔에이법)이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이 법은 상습적 흉악범죄에 대한 효율적인 수사 등을 위해 아동 성폭력, 강간, 마약 등 11개 범죄 피의자의 디엔에이를 채취해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디엔에이 채취 대상에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에 규정된 폭행·주거침입·재물손괴 등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내세워 폭처법으로 처벌받은 파업노동자에 대한 디엔에이 채취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는 기계적인 법 적용일 따름이며, 인권침해 요소가 있을 뿐 아니라 공권력 남용이다. 무엇보다 파업노동자의 디엔에이 채취는 이들을 흉악범죄자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파업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의 핵심이자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또 필연적으로 다수의 집단행동으로 표현된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면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이들을 상습적이고 파렴치한 범죄자인 양 취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와 노동권에 대한 경시로 볼 수밖에 없다. 쌍용차 파업에서 폭처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노동자가 150여명이나 되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모두 흉악범죄자라는 것인가.
디엔에이 채취는 노동자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노동운동의 약화를 불러오는 등 부정적인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형사처벌이 완료된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해 강제로 디엔에이를 채취할 경우, 이중처벌이 아니냐는 인권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디엔에이법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그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확장되는 것은 곤란하다. 디엔에이법의 적용 대상과 시행 방법 등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 전이라도 파업노동자에 대한 디엔에이 채취는 우선 중단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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