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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과학벨트 쪼개서 ‘정치벨트’ 만들려 하나 |
정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갈 일부 기관·시설을 충청권 외에 영남과 호남으로 분산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박형준 대통령 사회특보가 “과학비즈니스 ‘도시’가 아니고 ‘벨트’”라고 발언하는 것을 보면, 정부가 과학벨트를 쪼개기로 하고 여론 떠보기를 하는 듯이 보인다.
정부의 발상에선 무엇보다 과학적 타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벨트를 쪼개면 그것은 과학벨트로서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설과 인력이 함께 모여 있어야 연구 효율성을 낳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 원안이 세종시와 대전 대덕, 충북 오송·오창 등에 과학벨트를 형성하려 한 것도, 같은 측면을 고려한 결과였다. 이것을 충청권과 영남, 호남으로 쪼개 놓는다면 집적된 연구단지로서의 시너지 효과는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다. ‘국제 벨트’ 위상에 걸맞게 저명한 외국인 과학자를 여럿 유치하겠다는 구상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대안을 만지작거리는 배경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이후 영남권의 반발을 무마할 필요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김관용 경북지사와 김범일 대구시장은 엊그제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비공개 오찬을 함께 했다. 그 뒤 김 지사가 과학벨트 유치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그 자리에서 과학벨트 문제가 거론되었으리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여러모로 영남권의 민심을 무마해야 한다는 정치적 고려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만한 상황이다.
정부가 과학벨트를 분산배치하면 일부 지역의 반발을 무마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공항 백지화에 반발한다고 과학벨트를 쪼개서 나눠준다면 그것을 정상적인 국책과제 관리라고 볼 수 없다. 정치적 고려만을 앞세우는 돌려막기, 땜질식 행태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방송 좌담회에서 “과학벨트라고 하는 것은 과학적인 문제”라며 “정치적으로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되새겨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이 한 이 발언이다.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 문제에다 과학벨트까지, 모든 국책과제를 정략에 입각해 처리하려다간 지역갈등만 키우고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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